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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2>

9월 20일

by 자 작 나 무 2022. 9. 20.

그 일을 벌인 지 오늘로 꼭 넉 달째, 두 달 정도만 더 기다려보고 가망 없으면 허튼 꿈은 꾸지 않기로.

 

차를 산 뒤에 석 달 남짓 지나고  6,500km 정도 주행한 오늘에야 엔진 오일을 처음 교환했다. 4,000km 주행한 다음에 엔진 오일을 교환하려고 했는데 깜박하고 지난 뒤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할 때 머뭇거리는 내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야 미룬 숙제를 했다.

 

다음 엔진오일 교환 시기를 적어서 스티커로 붙여줬다. 다음엔 잊지 않고 늦기 전에 엔진 오일을 갈아야겠다.

 

경차 타다가 사고 나서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조금 더 안전한 차를 살 능력이 될 때까지는 계속 미룰 참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차를 사려고 마음먹으면 못 살 이유는 없겠지만 그냥 놀러 다니는데 쓰는 내가 굳이 비싼 차를 산다는 게 마뜩잖아서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점점 안전에 신경이 더 쓰인다. 내년에 4학년이 되는 딸이 이듬해에 졸업하면 그때는 이 차를 딸에게 넘기고 조금 성능이 좋은 차를 사야겠다. 딸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좋은 차를 보면 타고 싶어 했다. 일곱 살에 베르사유 궁전 앞에 주차되어 있던 슈퍼카를 보고 뭘 안다고 눈을 반짝이며 그 차를 타고 싶어 했다.

 

2006년 여름, 베르사유궁전 뒷마당 주차장에서 딸이 이 차를 보고 몹시 흥분했다.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차 사서 태워주겠노라고 말했다. 소꿉놀이하듯 둘이서 알콩달콩 말장난을 하며 잘 논다. 먼저 BMW를 한 번 사서 타 보고, 익숙해지면 벤츠를 사는 것으로 합의했다. 우리는 집도 없고, 돈도 없는데 언젠가 필요하면 돈이 생겨서 그런 일도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며 깔깔 웃는다.

 

2006년. 그때 37살. 이제 보니 어려보이네. ㅎㅎㅎ

 

매일 기침하기를 밥 먹듯이 하던 나를 파리까지 불러준 친구 덕분에 일주일간 꿈같은 첫 해외여행을 프랑스에서 즐겼다. 지금 사진을 보니 어떻든 웃고 찍어야 한다고 셔터를 누를 때마다 웃으려고 애쓴 덕분에 사진에선 어디가 어떻게 아픈 사람이었는지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선글라스 하나 장만할 여력이 없어서 굴러다니던 것 하나 쓰고 갔고, 옷도 사 입을 여력이 없어서 입던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돌아다녔다. 그래서 사진도 하나 같이 촌스런 차림에 촌스러움이 좔좔 흐른다. 

 

딸내미 옷은 내가 저리 입힌 게 아니다. 말려도 어쩔 수 없는 조합으로 제 맘에 드는 옷을 골라 입은 결과다. 다른 조합으로 입히려고 애썼지만 그게 엄마라도 맘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윽박지르는 사람이 아니어서.

 

오랜만에 옛날 사진 보니까 참 좋다. 내가 행복하게 잘 산 것 같아서 좋다. 이왕에 웃으며, 잘 살자.

 

그때 나를 파리로 불러준 친구가 있어서 감사했다. 뭔가 보답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떠나갔네..... 잘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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