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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퇴원

by 자 작 나 무 2023. 4. 15.

직장에서 수시로 오는 연락을 받고 내 능력 밖의 빠른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꼈다. 하루 더 병원에서 쉬는 것도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만큼 이 일이 위중한 일인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 일을 하는 것은 내 책임이다. 병가를 더 쓰면 되지만, 그렇게 하기엔 필요 이상으로 양심적(?)이고 불편한 것을 못 견뎌하는 편이다.

 

양심적이라는 표현은 내가 극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방향으로 해석하면 양심적인 게 아니라 모자라는 인간 유형이라고 보는 게 얼추 비슷하다.

 

약효가 떨어지니 처음 입원하러 가야겠다고 느낀 그 시점과 다를 바 없다.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눈은 잘 떠지지도 않는다. 엄청난 숙취가 몰려와서 그대로 고꾸라질 것 같은 상황과 비슷하려나. 주변에 일이 널려있는 공간에 돌아오니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그래서 병원에 하루라도 더 있었어야 했다.

 

이른 퇴원은 성급한 판단이었다. 병원에서 약 먹고 가만히 누워서 치료받고 자기만 하다가 깨서 괜찮은 줄로 착각했다. 내일부터 당장 어떻게 할지 지금은 걱정이다. 또 약 먹었으니 괜찮아지기만을 바랄 뿐. 이 정도면 집에서 쉬면서 약 먹어도 나아지면 좋겠다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괴롭다.

 

다음엔 그 규모보다 더 큰 병원에 가서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야 할지 이미 한 번 검사받고 드러누웠던 병원에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상황이 어찌 굴러갈지 알 수 없으니 학교 기숙사에 있는 딸에게 내 증상이 어떻다고 알렸다. 다음엔 더 놀라게 할 소식을 전하게 될까 봐 미리 귀띔했다. 학생으로 살아온 것 외엔 아무 경험도 없는 딸이 이 상황에서 나를 어떻게 챙겨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오래 산 나 역시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으면 눈이 좀 떠진다. 그러다 급 졸려서 잠들거나 머릿속에 안개가 그득한 상태로 거의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게 된다. 어느 순간 이조차도 기록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할 지경이 될 수도 있으니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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