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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해방 혹은 고립

by 자 작 나 무 2023. 4. 16.

*

한때 내 삶의 목표는 완벽한 해방이었다. 얽힌 것을 다 풀고 녹여내고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 윤회하지 않는 경지에 가닿고 싶었다. 10대에 시작하여 20대까지 고난 투성이었던 삶의 굴레에서 정신적으로 한발 물러난 자리에 서기까지 내 청춘은 그 해답을 찾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숙제를 지고 살았다.

 

 

30대에 완전히 새로운 삶에 진입한 뒤에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대체로 남은 어렵게 여기는 일은 쉽게 지나왔고, 남이 쉽게 하는 일은 참 어렵게 겪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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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아픈 바람에 일과 직장에서 분리되어 오랜만에 잠시 해방감을 느꼈다. 휴대전화 어디에도 1이라는 숫자도 찍히지 않는 완전한 해방 혹은 고립. 관계는 누군가 나를 찾을 때만 이어진다. 딱히 누굴 찾는 일은 몹시 드물기에 일 할 때 외엔 거의 사람과 접촉 없이 살다 보니 나만의 편협한 세계에 갇힌다.

 

그 사이에 내가 손을 내밀 수 있는 데에 최대한 손을 내밀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내 방에 앉아서 내 노트북으로 일기를 쓸 수 있게 됐다. 감사한 마음에 눈물 글썽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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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일기를 쓰다가 수목공원 산책이라도 하려고 외출 준비를 했다. 준비를 하고 자리에 앉았더니 이번 일로 몹시 곤란했던 나를 도와주신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약효가 떨어지면 아직 병원에 있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 정도로 곤혹스럽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대화를 하는 것도 어지간하면 머리에서 거부 반응부터 생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자동제어 시스템 같은 거다. 산사에서 한참 앉아서 주시는 보이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병원에서 너무 일찍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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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필요하다.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난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다. 코드가 맞으면 과할 정도로 투명해져서 즉시 바보임을 드러낼 정도여서 앞으로 잘 살아내려면 조절하는 능력을 더 익혀야 한다.

 

어제 아침엔 이렇게 혼자 살 팔자인가 생각했는데, 혼자 살아선 안 되겠다. 이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면 늦은 봄바람이라도 나야겠다. 안 되면 여름바람도 나고, 가을바람이라도 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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