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 건물에서 벽 뚫는 기계 소리가 하루 종일 진동한다. 어제는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 바람 쐬고 들어와서 전날에도 제대로 못 든 잠이 부족해서 오늘은 꼭 푹 자고 싶었다. 방학에도 기숙사에 잔류하기 위한 신청 기간인데 학교 기숙사 서버가 터져서 어쨌다는 둥 뜬금없이 낮에 전화하지 않던 딸이 전화해서 약 먹고 겨우 든 잠이 깬 다음엔 소음에 계속 시달린다.
집 밖에 기어이 나가야할 모양이다. 오늘은 기필코 쉬고 충전해서 청소 좀 할까 했더니......
여기까진 순전히 내 생각이고, 현실은 누운 자리에서 벽에 붙은 사진이 희미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새삼스럽게 서러워져서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희미해진 시야에 제대로 보이는 것도 없고, 머리도 점점 나빠져서 판단력도 더 엉망인 상태로 긴 시간을 또 살아남아서 견딜 것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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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저녁 약속을 앞두고 어쩐지 몸이 더 아픈 것 같고 불편한 감정이 생겨서 나가지 않았다. 저녁은 다음에 같이 먹자고 물렀다. 그런데 그 자리가 저녁 식사를 빙자한 소개팅 자리였다는 것을 어제 알게 됐다. 아쉽지는 않지만, 일부러 그런 자리를 애써서 마련하신 분께 모르고 실례를 한 것 같은 상황이 머쓱하다.
멀리서 손님이 오신다고 같이 통영 한 바퀴 하고 밥 먹자고 하셔서 통영 관광 가이드를 시키시려나 보다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혼자 사는 게 너무 안 돼 보여서 누군가 연결시켜주려고 하신 모양이다.
토요일에 내가 갑자기 몸이 더 아파서 못 나간다고 했을 때 사실은 이러저러하다고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더니 그게 자연스럽게 사람을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안 나와서 다신 오지 말라고 하고 대신 대접 잘해서 보냈다고 하셨다. 청하지 않은 도움을 주려고 애쓰시는 게 감사한 일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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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뵌 남 선생님은 명예 퇴직하신 뒤에 6개월은 홀가분했으나, 이후에 갑자기 가족들과 분리되어 혼자 그 지역에 남게 되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게 뭔지 나도 조금 안다. 늘 사람 속에 살다가 완전히 혼자 되어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자고 혼자 말하고 혼자 걷는........ 이 삶이 홀가분해서 좋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거다.
때때로 지인과 어울려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그런 거다. 딸은 품을 떠나서 어쩌다 잠시 스쳐가고, 나는 이 망망대해에 혼자 둥둥 떠서 흘러다닌다. 잠을 이틀 동안 제대로 못잔 탓에 얼굴이 거멓게 가라앉았고, 눈도 푹 꺼지고 감정도 제멋대로 가라앉는다. 다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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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반성이 필요한 때다.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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