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서 오래된 수첩을 발견했다. 그중엔 20대에 쓰던 수첩도 있었다. 다이어리에 매주 만난 사람 이름과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20대 중반에 피씨통신할 때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천리안, 나우누리 게시판에 꽤 많은 글을 썼고, 그 글을 매개로 댓글이나 이메일을 받거나 소통했다. 대화는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비중 있는 이메일은 텍스트로 저장해두기도 했다.
스물다섯 살에 겁 없이 중학생 몇 명 데리고 텐트까지 지고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는 2박 3일 등반을 할 정도로 나는 상당히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어제 딸과 함께 길냥이 보러 산에 가는 길에 잠시 그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의 딸 나이에 내가 하고 다녔던 것을 되짚어보면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며 하루 일정으로 남도 끝 해남, 강진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안동 봉정사에 들렀다가 강원도 여행에 합류하기도 했다.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그렇게 다닐 정도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나는 그렇게 다니고 사람을 만나며 꽤 활기차게 살았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 혼자 고립된 삶에 빠져들었을까.
내 생활의 문제점을 찾다 보니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할 뿐 완벽한 격리나 고립을 원한 것은 아니다. 불편한 일을 겪는 게 싫어서 피하고 싶은 내 욕심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내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아플 때 그대로 나를 내보이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싫다.
오늘은 처음으로 여러 가지 약을 먹은 뒤에 통증이 조금 덜 느껴져서 거짓말 같은 이 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어서 살짝 긴장한 상태로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컴퓨터 앞에서 조잘댄다.
문득 발견한 수첩, 30대 중반에 쓰던 수첩에 메모한 글귀를 옮긴다.
'...... 예상했고, 그 불안과 절망을 견디기 위해 해찰에 해찰을 거듭했던 거더구나! 또한 다른 일에 몰두함으로써 순간순간의 불안과 절망을 보상받고자 했던, 나보다는 바로 내던져진 삶의 조건에 정공법으로 견뎌내고 있는 거였어.'
2003년 어느 날 수첩에 메모한 일기
호사
며칠동안 계속 그 집 도넛과 커피가 먹고 싶었다. 갇힌듯한 생활에 대한 반항심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엉뚱한 곳에 신경이 쏠리면 의외로 집착하게 된다. 작은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도넛을 즐기고픈 욕망.
일요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한 발짝도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토요일 점심때 잠시 난 시간엔 시장을 봐오는 것 이상의 짬이 나진 않았다. 오늘은 기어코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나왔더니 기다려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았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 약간의 조바심이 났고 그걸 이기지 못해서 택시를 탔다. 중간에 합승한 승객을 내려준 뒤 택시 기사가 둘러서 엉뚱한 곳으로 가려한 바람에 내 심기는 더 불편해졌다.
택시에서 내려서 도넛 가게에 이르는 짧은 구간에서 지갑에 거스름 돈을 챙겨 넣느라 앞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았고, 아트 타일을 넣겠다고 보도 곳곳에 홈을 파놓은 것을 보지 못해서 그만 거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잖아도 부실한 무릎이 타박상에 절룩거려졌다.
억울한 듯 무릎을 털고 만지면서 꿋꿋하게 도넛 가게로 들어갔다. 도넛과 커피를 사서 원하던 대로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상당한 호사를 누렸다.
이만하면 엄청난(?) 호사에 해당한다. 지출을 적극적으로 줄이려 한 시점에 뚜렷한 목적 없는 충동적 지출은 확실히 사치다. 그래서 오늘은 그것을 더 진하게 즐기기로 했다. 따뜻한 커피에 달콤한 도넛이 입안에 머물다가 지나는 순간의 원초적 만족감이란 유치하고 사소하지만 이런 기분을 느긋하게 즐겨보지 않은 이들은 충분히 알기 힘들 거다.
잠시도 아이와 분리될 수 없는 환경에서 변변한 벌이도 없이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그 시절에 구인광고가 빽빽하게 씐 신문을 뒤지고 어려웠던 시간이었을 텐데 그런 일보다는 작은 즐거움을 찾아내서 즐길 줄 아는 나여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든지 커피와 도넛 정도의 간식은 아무런 계산 없이 사 먹을 수 있는데도 저렇게 호사를 누리듯 흠뻑 즐기지는 못한다.
난 많이 변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