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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악의

by 자 작 나 무 2023. 8. 26.

오늘(8월 25일) 우리 집 고구마

어제보다 훌쩍 자란 고구마를 보고 살짝 걱정이 됐다. 더 크게 자랄 수 있는데 저기 둬서 더 자라지 못하게 되면 고구마가 힘들까? 뭐 그런 생각에 어디에 옮겨줄까 고민하다가 밖에 커다란 플라스틱 통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꽤 오래 내버려둬서 풀씨가 날아와서 억새밭처럼 이름 모를 풀이 수북하게 자랐다. 온갖 벌레 서식지로 확고한 위치를 잡고 어찌나 촘촘하게 자랐는지 억센 줄기를 뽑아내거나 뿌리를 파내기도 힘들 정도다.

그 자리를 잘 자란 고구마에 내주려고 그 잡초 무더기를 조금 자르고 파내고 뽑고, 마른 부분은 태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잡초라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을 마음먹고 제거하려니 거부감이 들어서 힘들었다.

고구마 살리겠다고 잡초 뽑는 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의도를 가지고 산 것을 해치는 게 정말 못할 짓이다 싶어서 손 떨리고 온몸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시장에 손질해서 내놓은 채소를 사서 먹는 것과 뿌리째 식물을 뽑아서 죽게 하려는 것은 내가 느끼는 부담감이 달랐다.

이 정도로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죄책감에 더는 못하겠다 싶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식물을 뽑아버리는 것도 기분이 이러한데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을 해칠 때는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 가능할까. 벌레를 향해 살충 스프레이를 뿌릴 때는 나를 물거나 공격당하는 위험에 대한 일종의 방어적인 핑계가 있지만, 그 외엔 엄청난 후유증과 중압감에 나는 차마 못할 것 같다.

악의를 가지고 알고도 생명을 해치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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