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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3>

8.27.

by 자 작 나 무 2023. 8. 27.
통영 방향 고성 공룡나라 휴게소

오전에 나가서 딸내미 태우고 남해 미조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내키지 않는 메뉴는 먹지 않겠다는 의지 충만한 딸의 본능적 욕구에 굳이 동의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또 달렸다.

남해 부산횟집에서 물회를 먹고


눈이 감겨서 운전할 수 없을 지경이어서 카페인 충전하고 마저 달렸다. 딸이 기숙사에서 짐을 다 쌀 때까지 세 시간쯤 밖에서 기다렸다.

줄이 끊어진 팔찌를 들고 수선 맡기러 간다는 핑계로 백화점에 갔더니, 툭 끊어진 금속을 다시 붙여주는 수리는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포인트를 만 원 쓸 수 있게 줘서 그걸로 올디스 팥빙수를 주문했다.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올디스 팥빙수도 판다. 달달한 것을 먹고도 기운이 돌아오지 않고 끝도 없이 우울해진다.

딸에 대한 의무감 없이 따로 존재하고 싶은 욕망도 없는 희미한 의식 덩어리일 뿐인 것 같다. 이 연줄이 없다면 대략 주변 정리하고 가만히 누워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굳이 일을 만들지도 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딸을 이렇게나 찾아다니는 모양이다.

이대로 내일 지구의 종말을 맞을 것 같은 기분으로 담담하게 하늘을 봤다. 왜 이렇게 덧없고, 덧없고, 또 덧없는지…..

8월 27일 고구마

창가에 뒀던 고구마를 거울 앞에 놓고 생기를 나눈다. 아침에 비우고 새로 부어준 물만으로도 이렇게 자라는 생명을 보면서 내 속에 있는 투덜이를 꼬집어본다.

딸이 내 차에 실어둔 짐을 어깨에 팔에 주렁주렁 달고 왔는데 아직 많은 게 그대로 있어서 다시 가야 한다. 이사를 핑계로 딸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하루 종일 뭔가 해야 할 일을 맡아서 잘하고 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내가 이럴 거 같아서 꼭 딸을 낳으려고 애썼나 보다. 나를 살아있게 붙들 것이 필요해서.

그런데…..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니 그냥 드는 잠에 아주 멀리 가고 싶다.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먼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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