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딸을 만나서 어딘가로 함께 갈 때마다 캐럴을 들었다. 이 시기가 아니면 흥겹게 들을 수 없는 곡이라며 딸이 내 휴대전화 플레이리스트를 만지작거린다. 올해는 이 곡이 대세라며 장거리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에 크리스마스 노래 한 곡을 꺼낸다.
내 딸에겐 크리스마스쯤엔 늘 겨울방학이었고, 크리스마스 전날쯤 제 친구들과 어울려서 남해 원예 예술촌에 크리스마스 장식한 집구경을 하며 사진 찍고 놀았던 기억이 해마다 반복되어서 어쩐지 신나고 행복한 기분이 먼저 든다고 했다.
올해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거기 가서 행복한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 여행을 하면 좋겠다.
내게도 크리스마스에 얽힌 행복한 기억이 있다. 산타클로스가 진짜 있는지 없는지 헛갈릴 정도로 순진하던 어린 시절엔 크리스마스엔 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침에 눈 뜨면 머리맡에 있던 선물을 받고 마냥 신나 하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이 준비한 것이거나 진짜 산타가 왔다 갔거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유도 모르고 선물은 받는 게 아니라, 한 해 동안 착하고 성실하게 산 것을 인정받고, 하늘로부터 인증받으면 주는 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여겼다. 성탄절엔 교회에 가서 연극 공연도 하고, 성경 퀴즈 대회에서 우승해서 상품으로 새 공책을 두툼하게 해마다 받아와서 장롱 안에 쟁여놓고 썼다. 나는 어떤 역할이거나 주어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받은 상품을 오빠와 동생에게 나눠주며 으쓱했다.
와이셔츠 상자에 내가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을 차곡차곡 쌓아서 보관했다. 국민학교 5~6학년 무렵에 100장이 넘었으니 이젠 더 받아오지 말라는 부모님의 너스레를 듣고 행복해했다. 일체 칭찬을 하지 않던 내 부모로부터 받은 최대의 칭찬이었다. 그렇게 목말라하던 칭찬을 크리스마스에 하늘로부터 받는다고 생각하니 더 즐겁고 행복했다. 어린 내가 많은 것을 참고 견딘 칭찬을 받는 날이었다.
10년에 한 번쯤 잠든 새벽에 펑펑 쏟아진 눈이 쌓인 마당을 보고 환호하던 어린 시절, 나의 크리스마스는 교회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빛나던 장신구처럼 반짝이는 몇 안 되는 행복한 기억이다. 오늘 출근길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으며 문득 그 기억이 떠올라서 고개를 까딱이며 어깨춤을 췄다.
2023-12-06
오늘 낮에 밖에 나와서 숨통 트이는 하루를 보내서 이렇게 말이 많아진 건가?
'흐르는 섬 <2020~2024>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이제 사귀는 거야? (0) | 2023.12.07 |
---|---|
12월의 봄바람 (0) | 2023.12.06 |
꽃사슴 공주와 함께 보낸 오후 (0) | 2023.12.06 |
곰치 국 (0) | 2023.12.06 |
웃을 일 (0) | 2023.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