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7
시험 감독 중에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코 안이 마르고 금세 귀도 막혀서 먹먹해졌다. 사흘 내리 그 교실은 청소도 환기도 거의 하지 않고 온풍기만 돌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어서 잠시 교실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를 마시고 들어왔다. 부감독이어서 교실 뒷자리에 있었더니 뒷문은 열지 않으니 그쪽 공기는 더 탁한 것 같았다. 시험 끝나고 우리 반에 가서 양방향으로 창을 다 열었다. 다른 교실의 청소나 환기 문제까지 말하면 쓸데없는 참견이 된다.
해야 할 일 천지인데 그 시간에 갇힌 공간, 탁한 공기에 한 시간 묶였다가 나오면서 마른 코 안에서 코피가 터졌다. 머리도 터질 것 같더니 바깥공기를 쐬니까 한결 낫다. 큰일이다. 그런 극악한 환경에서 건강과 관련한 것은 뒷전이고, 시험 문제 몇 문제 더 맞혀서 몇 점 더 받는 게 도대체 뭐라고...... 분노가 치미는 거꾸로 가는 세상.
코피만 나는 게 아니라 온몸에 찰과상을 입은 듯 기분이 묘하다. 너무 힘들어서 밥알이 입안에서 맴돈다. 집으로 가다가 차를 돌려서 식물원 카페에 갔다.
좋으면 보고 또 보고, 가고 또 간다. 좋은데 왜 한 번만 봐? 좋은데 왜 한 번만 가? 자주 보고 자주 가야지. 좋으니까~~ 난 그러고 싶은데..... 우리 이제 세 번째 만났으니 사귀는 거야? 지난 일요일, 어제, 오늘. 일주일도 안 됐는데 세 번째 왔다.
흰 동백인 줄 알았는데 곁에 핀 흰꽃은 산다화란다. 단체 손님 안내를 하던 카페 주인이 손님에게 마이크로 안내하는 말을 들었다.
한 차례 사람들이 지나간 뒤에 꽃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산다화가 흘린 사연을 들어주는 것처럼 잎으로 꽃잎을 받아주는 몬스테라.
나도 몬스테라와 사귀고 싶다. 내 말도 좀 들어줘~ 나도 좀 안아줘~
어제 저 카페에 함께 간 동료가 나를 보더니 식물과 소통하는 사람은 친구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런 옛말이 있다고 일러준다. 식물 보고 좋아서 벙글벙글 웃는 나를 보고 꽃사슴 공주가 어제 그렇게 말했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오늘은 혼자 와서 책 몇 장 읽다가 여기서 눈을 혹사하는 게 아니다 싶어서 덮었다.
저 자리에 앉아서 나무 아래에 머리를 넣고 내 몸에 거미줄처럼 걸린 잡념망상을 제거하는 상상을 해본다.
커피나무에 새로 난 잎이 연두 빛으로 반짝인다.
햇빛을 듬뿍 머금은 아이비. 사진으로나마 저 화사한 빛을 훅 빨아들이고 싶다.
500년 넘게 살았다는 동백나무에도 꽃이 핀다.
사람들이 주변에 돌을 쌓는다. 살아서 아직도 풍성한 잎을 거느리고 꽃 피우는 존경스러운 나무.
500년 살았다는 '천운'
난 앞으로 50년 남짓 어찌 살까.....
'흐르는 섬 <2020~2024> > <20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7 (0) | 2023.12.07 |
---|---|
이름을 부른다는 것 (0) | 2023.12.07 |
12월의 봄바람 (0) | 2023.12.06 |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기억 (0) | 2023.12.06 |
꽃사슴 공주와 함께 보낸 오후 (0) | 2023.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