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잠들기 전에 오늘 아점을 어디서 먹을 것인지 합의한 바에 의하면, 해물된장을 맛있게 끓여주는 푸줏간에서 돼지갈비를 먹기로 했다. 고기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집에 고기 먹은 뒤에 주는 해물된장이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그 된장과 밥 먹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늦잠 잔 딸은 어젯밤에 먹은 음식이 너무 푸짐해서 배고프지 않다고 한 발 뺀다. 나는 옷에 고깃집에서 나는 냄새가 배는 게 싫어서 슬쩍 한 발 뺐다. 그러다 집 근처 돼지국밥 맛집에서 다시금 목적지는 거제 오색집으로 옮겨갔다.
매번 낙지볶음만 주문했는데 오늘은 해물된장을 주문했다. 된장이 나오기 전에 반찬을 거의 다 해치운 뒤에 2인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넉넉한 양의 해물된장 뚝배기를 받았다.
다시 채워주신 반찬 그릇을 놓고 딸이 음식 사진을 찍는다.
가리비와 게를 건져먹다 보니 아주 신선해 보이는 소라 한 마리가 국물 속에 들었다. 까서 딸에게 넘겨줬다. 나도 소라 좋아하는데, 어릴 때 더러 맛있게 먹었던 싱싱한 해물을 앞으론 이렇게 쉽게 먹을 수 없는 곳으로 간다는 아쉬움이 딸에게 건넨 소라 한 알에도 묻어갔으리라.
오늘 통영, 거제, 고성 곳곳을 네비로 찍고 다녔다.
최근에 자주 가는 식물원 카페에서 서비스로 주신 바나나가 손가락 보다 살짝 굵은 정도로 작은데 달고 맛있다. 그 식물원에서 키워서 딴 바나나 중에 팔기엔 애매한 크기의 바나나를 서비스로 주셨다.
함께 한 순간이 나중에 짧아도 영상으로 남기면, 언젠가 아주 먼 훗날 딸이 우리가 함께한 삶을 추억할 때 더 애틋한 감정이 들 것 같아서 종종 사진 찍는 척하며 소소한 영상도 찍어서 남긴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파파야 열매와 꽃을 보고 나는 그저 좋은데, 딸은 먹어보지 못한 과일이니까 그다지 감흥이 없단다. 다음에 꼭 파파야를 시장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나라에 데리고 가서 같이 맛봐야겠다.
줄기에서 열매가 자라서 신기하다.
'자보티카바' 익으면 거봉 같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잘 재배하지 않아서 열 명 중에 아홉은 맛보지 못한 과일이라고 한다. 줄기에서 열매가 맺히는 신기한 나무라고 씐 안내판에 의하면, 커다란 씨를 둘러싼 하얀 과육은 환상적으로 달콤하며, 껍질은 기분 좋게 새콤하다고 한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