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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3>

간장떡볶이

by 자 작 나 무 2003. 7. 19.

2003. 7. 19

 

주말이다. 요일이나 날짜에 무감각하게 사는 까닭에 주말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느낌도 없지만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하루가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면 어김없이 주말이다.

동네 마트에 나가보면 유난히 사람이 많고 가족끼리 시장을 보러 온 사람이 평소보다 많다. 신경쓰지 않고 무감각하게 지낼 때 느끼지 못하든 쓸쓸함이 그렇게 사람 많은 장소에 가면 느껴진다.

주말 우울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힘이 빠진다. 일부러 빨래 모아둔 것을 주말에 하고 평소에 대충대충 하던 청소도 주말을 끼고 대청소를 한답시고 일을 만들어보아도 역시 그 이상한 우울증은 간헐적으로 나를 흔들어 놓는다.

아이 손을 잡고 바닷가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여느 때와는 달리 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뭘 먹어도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다.

가만히 있자니 온갖 망상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숨이 멎을 것만 같아서 며칠 전 떡볶이가 먹고 싶어 사놓은 작은 가래떡 한 봉지를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평소에 안 하던 요리를 했다.

매운 것을 거의 먹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간장떡볶이를 했다. 간단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요리라 신경이 쓰였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냉장고를 뒤져서 넣을 만한 재료는 다 넣고 참으로 오랜만에 뭔가를 정성스레 만들어보았다.

누군가를 위해, 먹어줄 사람이 있을 때, 요리하는 기분이랑 내가 먹기 위해 요리할 때 기분은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나를 위해 요리할 때는 정성이 덜 들어가는 기분이 들고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경우는 나이가 들수록 횟수가 줄어든다.

김치도 제법 갖가지 담을 줄 알았던 것 같은데 아이가 매운 김치를 먹지 않다 보니 나도 덩달아 김치를 아예 밥상에 차려놓지 않고 아이 식성대로 같이 한술 먹고 치우는 게 어느새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가끔은 그런 내 모습이 혼자 참 서럽고 서글플 때가 있다. 오늘은 모처럼 마음 먹고 요리를 했는데 아이는 이전에 짜장면을 먹어서인지 떡볶이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나 혼자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먹었다.

맛있게 몇 개 집어먹고 말 것을 나 말곤 먹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남겨서 못 먹게 되기라도 할까 봐 자꾸만 나도 모르게 서럽게 일어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 맛있게 한 접시를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나 이번엔 접시에 덜지도 않고 꾸역꾸역 화난 사람처럼 먹어댔다.

아이는 버섯만 골라 먹고 떡은 권하는 손을 마지못해 한 입 베어먹고 말았다. 아이 많은 이웃집에라도 싸 들고 가서 함께 먹자고 하고 싶었지만 마침 오늘 아이들 방학하는 날이라 그 집 식구들은 아이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주말에다.... 방학이라 더 가족끼리 나서는 모습이 자주 보일 텐데 나도 아이랑 둘이 한 가족인데 우리는 뭔가 역시 빠진듯한 쓸쓸한 모습의 가족이라는 생각이 떨치지 않는다.

그렇게 저녁을 해결하고 나니 해가 어스럼 하게 졌는데도 밤이 길 것 같다. 아이를 데리고 음악 분수대 근처라도 나갔다와야겠다. 바람 쏘이고 음악 듣고 조명까지 화려한 분수대를 보며 환호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 마음 한쪽에 씁쓸하게 배어드는 기분에 오히려 우울해질까 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이미 몸은 며칠 심하게 앓은 감기 탓에 기운이 없어 누울 자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생각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주말 우울증 때문에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대로 콕 쓰러져 누우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아스라한 기분을 벗어내기 위해 무언가 기분을 바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자신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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