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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3>

거울 앞에서

by 자 작 나 무 2003. 7. 8.

2003. 7. 8

사춘기 때 여드름으로 덮인 내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거울 보는 걸 무척 꺼렸다. 그 생각이 대학생에 되어도 이어지는 바람에 여성으로 태어나 불리한 외적 조건 때문에 받는 불이익에 관한 생각과 태어나면서 이미 정해진 모습으로 차등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적잖았다.

부딪혀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먼저 열등감에 빠졌고 포기하는 무기력함을 보였다.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것이 있음으로 후천적인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종류의 일에 대한 열등감은 좌절감까지 덤으로 안겼다.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선 차라리 욕심내지 않고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을 돌리면서 그런 상황이 반복되진 않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던 시기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상당한 스트레스의 요인 중 하나였다.

거울을 똑바로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머리도 대충 빗고 옷도 편한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멋을 부려본들 그건 선천적인 아름다움을 타고 난 사람에게만 가당한 일이라 여겼다. 그런 스트레스를 받은 건 나 역시 외모를 중시하는 가치관에 따르는 생각을 가졌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내가 아무리 아름다운 내면의 세계를 가졌던들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누구든 내 흉 많은 얼굴만 보고 두 번 보려는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으로 어느새 변해갔다.

전공과목 중 동양 고전의 근간이라는 '주역'이라는 책을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깊이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아름아름하게 눈에 보일 듯 잡힐 듯 나를 지배하던 생각의 근간이나 주류를 이루던 생각들에 대해 가끔은 시류나 철학 사조들에 휩쓸려 갈대처럼 흔들렸다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던 그 시기에 그 책은 내게 참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어릴 적 TV에서 [주역 부인]이라는 단막극을 본 적이 있다. TV에 나온 주역 부인 이야기는 주역의 내용과는 큰 연관성 있는 이야긴 아니었지만, 몇 년 동안 그 부인이 주역을 공부하는 사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정도로 흉한 외모였으나 그 공부를 마친 다음 허물을 벗은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이었다는 내용의 허구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 항상 그 이야기의 이면을 생각해본다. 왜 그런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의 내게까지 들려오는가. 정말 주역 부인이 뱀처럼 허물을 벗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주역 공부에 몰입한 몇 년의 시간 동안 외모를 가꾸거나 돌보지 않아서 냄새가 나거나 흐트러진 모습이었을 테고 그 공부가 끝난 다음 정돈된 모습에 그간 공부로 다져진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이 내공으로 다져져 사람들의 눈에 더 빛나고 아름답게 비친 것은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읽어낼 수 없는 깊이 있는 눈빛이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더해진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고서부터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던 공부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고 내 외모에 대해 끄달리던 신경도 무뎌지게 되었다. 딱히 예쁘진 않아도 비뚤어진 데 없이 반듯한 이목구비와 신체가 기형이 아니라 반듯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학내에서 남학생들을 볼 때도 잠시 눈에 멋있게 보이는 외모를 가진 남학생들에 두 번 눈길을 주는 일도 없어졌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그 멋진 외모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텅 빈 머리로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그런 생각을 하면 평범한 남자들에 대한 호감은 마이너스 수치로 떨어져 버리는지라 남들은 즐겁게 하는 미팅에도 흥미가 없었다.

내가 맘에 드는 남자는 내가 골라야 한다는 우스운 생각. 약간은 오만한 생각.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나였다. 물론 모든 사람에 대한 시각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될 사람에 대한 경우에만 까다롭기 그지없는 잣대를 들이댔다.

스쳐 간 인연은 많아도 그 잣대에 맞고 맘에 차는 사람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 손꼽아지는 사람뿐이다. 그 사람들은 내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내 인생을 뒤바꿀만한 대단한 의식 세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감정의 이끌림이 적절히 조화되어 호감이 극대화되었기에 그들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젠 냉정하게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를 벗어놓은 냉정한 시선이 거울에 아프게 꽂힌다. 많이 지쳐있고 눈 아래 그늘이 역력하다. 얼마나 아파한 뒤에야 다시 담담하게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까. 편견에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다듬어져야 시련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내가 될 수 있을까. 깊은 심연까지 흔들리지 않고 바람처럼 스쳐 가는 일들로 인지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아픈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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