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 광고가 가득한 신문을 몇 부 가져다 놓고 새벽녘 아이가 잠든 사이 눈이 빠지도록 샅샅이 들여다보다 이럭저럭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래도 다 뒤지기 전까진 희망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초조함이 덜했는데 막상 다 뒤지고 나니 기운이 죽 빠진다.
홀 서빙, 유흥 음식점 등에선 30대 아줌마들도 더러 써준다는데, 아무래도 체질에 맞지 않는 곳이라 그걸 접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뒤적뒤적해보니 지난번에 면접 보러 갔었던 학습지 교사나 학원강사, 경리..... 그런 것들이다.
학습지 교사는 며칠씩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아야 한다기에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찮아서 면접 보고 몇 번씩 오라는 전화를 받고도 그냥 덮어버린 곳이고, 더구나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카드사에서 내 급여를 거의 다 압류할 것이라 열심히 일하고 어쩌면 입에 풀칠도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무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카드로 대출이며 현금서비스 내서 빌려 간 아줌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찾아가 한바탕 눈물을 쏟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사람 말을 믿은 죄,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면서 화를 낸다는 게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학원은 시간대가 맞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 몇 군데 문의 전화를 하다 지치고 경리 일이라도 해보려니 나이가 너무 많다나? 일 잘하면 그만이라 생각한 내가 또 바보가 되는 순간......
그래도 몇 군데 간추려 메모해두었다. 내일 잠 깨는 대로 전화부터 해보고 그나마 급여가 적더라도 시간만 맞으면 찾아가 볼 참이다.
좋지 않은 일이 한꺼번에 겹치는 경우, 견디긴 어렵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힘든 거 다 넘기고 나면 한동안은 어쩜 잠잠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기대감에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금전적으로 대책 없어 보긴 처음이다. 이대로 가다간 며칠 안에 아이도 굶길 판인데 면접 보고 일거리 찾으러 돌아다니다 화가 나서 며칠을 아무 일도 없는 한량처럼 음악이나 듣고 즐기며 아이 데리고 산책이나 다니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해 질 녘 아이 먹일 도시락을 싸서 가방에 넣고 둘이 손잡고 바닷가 음악 분수대까지 걸어가서 조경이 잘 된 리조트 부근을 내 정원처럼 산책하고 일몰도 보고, 어둠이 내리면 화려한 조명과 더불어 음악 분수가 춤을 추는 광경을 밤 깊도록 보면서 아이랑 껴안고 흔들흔들 춤도 추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아는 곡이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도 해보고 그렇게 밤은 깊어지고 하루는 저문다.
낮엔 낯선 바닷가에서 아이랑 물수제비를 뜨면서 낚시꾼들 구경하고, 맑은 물 아래 헤엄쳐 다니는 작은 물고기 떼 구경하며 아이랑 환호하고 즐겁게 지낸다. 누가 이런 나를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양발 등에 불 떨어진 백수라 여길까......
부잣집에서 편히 자란 귀한 딸 같아 뵌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수심 어린 낯빛만 아니면 얼마든 그렇게 보아주니 차라리 그게 고마운 일로 생각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애꿎은 소리 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만다.
며칠 안에 어쩜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미리 앞질러 걱정을 많이 한 탓에 지금은 큰 두려움도 걱정도 없는 듯하다. 내일 아이 손을 잡고 얼마나 걸어 다녀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아이를 잠시라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저녁 늦게 끝나는 일은 엄두도 낼 수가 없고 비실비실한 몸에 고된 일 하다간 며칠 만에 드러누워 차라리 안 한 것만 못한 꼴이 될 터라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
내 사정을 흘려들은 누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처럼 그런 상황이면 몸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나?.."
다소 충격적인 말이었다. 잠시 놀란 맘과 화를 다스린 후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이런 몸뚱이 사기나 한 대요?"
웃을 일이 아닌 거 같았지만 그렇게 웃어넘겼다. 몸을 팔아 먹고살아야 할 정도면 차라리 아이랑 죽는 게 낫겠다고 엄포까지 놨으니 아마도 그런 말 한 사람이 오히려 더 얼굴 화끈거리고 미안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비참한 지경인가 하는 생각에 또 그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뜻밖에 이런 날도 있고 이런 일도 겪고.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난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버린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깐. 살아야 할 목숨이니 살 방법이 있겠지. 쓴웃음이라도 지어본다.
꿈속에서조차 어딘가 일자리를 구하러 면접을 보러 갔다. 맘 다져 먹고 공장엘 가서 면접을 보려는데 큰 개 한 마리가 달려들어 다리로 나를 꽉 잡는 게 아닌가.
언젠가 개한테 물려본 경험 이후엔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무는 습성이 떠올라 꿈속이라도 너무 무서웠다. 공장장이랑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 개는 갈 생각을 않고 내 허리를 꽉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개 주인한테 무섭다고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보았지만 개는 주인 말도 듣지 않고 나한테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 바람에 겁을 먹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급기야 손까지 물렸다.
꿈이었지만 깨고 나서도 이상한 기분에 우울했다. 왜 이렇게 내 앞을 가로막는 게 많은지... 꿈속에서조차 시원시원하게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그나마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찾아간 공장에서 개한테 붙들려 면접도 못 보고 도망 나오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헛웃음 나는 일이다.
봄날 개꿈치곤 그냥 무시하기 어려운 꿈이다. 그래도 내일은 무언가 결실이 있겠지. 아이랑 직장 구하면 사주겠다고 약속한 게 너무 많아서 빨리 일을 해야만 한다.
내일도 허탕 치면 어쩌나..... 비나 오지 않으면 그 바닷가 음악 분수 앞에서 졸음이 올 때까지 놀다 와야지.
홀 서빙, 유흥 음식점 등에선 30대 아줌마들도 더러 써준다는데, 아무래도 체질에 맞지 않는 곳이라 그걸 접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뒤적뒤적해보니 지난번에 면접 보러 갔었던 학습지 교사나 학원강사, 경리..... 그런 것들이다.
학습지 교사는 며칠씩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아야 한다기에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찮아서 면접 보고 몇 번씩 오라는 전화를 받고도 그냥 덮어버린 곳이고, 더구나 그런 일을 하게 되면 카드사에서 내 급여를 거의 다 압류할 것이라 열심히 일하고 어쩌면 입에 풀칠도 못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무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카드로 대출이며 현금서비스 내서 빌려 간 아줌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화가 나서 찾아가 한바탕 눈물을 쏟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사람 말을 믿은 죄,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면서 화를 낸다는 게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학원은 시간대가 맞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 몇 군데 문의 전화를 하다 지치고 경리 일이라도 해보려니 나이가 너무 많다나? 일 잘하면 그만이라 생각한 내가 또 바보가 되는 순간......
그래도 몇 군데 간추려 메모해두었다. 내일 잠 깨는 대로 전화부터 해보고 그나마 급여가 적더라도 시간만 맞으면 찾아가 볼 참이다.
좋지 않은 일이 한꺼번에 겹치는 경우, 견디긴 어렵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힘든 거 다 넘기고 나면 한동안은 어쩜 잠잠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기대감에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본다.
이렇게 금전적으로 대책 없어 보긴 처음이다. 이대로 가다간 며칠 안에 아이도 굶길 판인데 면접 보고 일거리 찾으러 돌아다니다 화가 나서 며칠을 아무 일도 없는 한량처럼 음악이나 듣고 즐기며 아이 데리고 산책이나 다니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해 질 녘 아이 먹일 도시락을 싸서 가방에 넣고 둘이 손잡고 바닷가 음악 분수대까지 걸어가서 조경이 잘 된 리조트 부근을 내 정원처럼 산책하고 일몰도 보고, 어둠이 내리면 화려한 조명과 더불어 음악 분수가 춤을 추는 광경을 밤 깊도록 보면서 아이랑 껴안고 흔들흔들 춤도 추어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아는 곡이 나오면 흥얼흥얼 따라도 해보고 그렇게 밤은 깊어지고 하루는 저문다.
낮엔 낯선 바닷가에서 아이랑 물수제비를 뜨면서 낚시꾼들 구경하고, 맑은 물 아래 헤엄쳐 다니는 작은 물고기 떼 구경하며 아이랑 환호하고 즐겁게 지낸다. 누가 이런 나를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양발 등에 불 떨어진 백수라 여길까......
부잣집에서 편히 자란 귀한 딸 같아 뵌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수심 어린 낯빛만 아니면 얼마든 그렇게 보아주니 차라리 그게 고마운 일로 생각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애꿎은 소리 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만다.
며칠 안에 어쩜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미리 앞질러 걱정을 많이 한 탓에 지금은 큰 두려움도 걱정도 없는 듯하다. 내일 아이 손을 잡고 얼마나 걸어 다녀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아이를 잠시라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저녁 늦게 끝나는 일은 엄두도 낼 수가 없고 비실비실한 몸에 고된 일 하다간 며칠 만에 드러누워 차라리 안 한 것만 못한 꼴이 될 터라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
내 사정을 흘려들은 누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처럼 그런 상황이면 몸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나?.."
다소 충격적인 말이었다. 잠시 놀란 맘과 화를 다스린 후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이런 몸뚱이 사기나 한 대요?"
웃을 일이 아닌 거 같았지만 그렇게 웃어넘겼다. 몸을 팔아 먹고살아야 할 정도면 차라리 아이랑 죽는 게 낫겠다고 엄포까지 놨으니 아마도 그런 말 한 사람이 오히려 더 얼굴 화끈거리고 미안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할 정도로 비참한 지경인가 하는 생각에 또 그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뜻밖에 이런 날도 있고 이런 일도 겪고.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난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버린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깐. 살아야 할 목숨이니 살 방법이 있겠지. 쓴웃음이라도 지어본다.
꿈속에서조차 어딘가 일자리를 구하러 면접을 보러 갔다. 맘 다져 먹고 공장엘 가서 면접을 보려는데 큰 개 한 마리가 달려들어 다리로 나를 꽉 잡는 게 아닌가.
언젠가 개한테 물려본 경험 이후엔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무는 습성이 떠올라 꿈속이라도 너무 무서웠다. 공장장이랑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 개는 갈 생각을 않고 내 허리를 꽉 붙들고 있는 게 아닌가.
개 주인한테 무섭다고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보았지만 개는 주인 말도 듣지 않고 나한테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 바람에 겁을 먹고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급기야 손까지 물렸다.
꿈이었지만 깨고 나서도 이상한 기분에 우울했다. 왜 이렇게 내 앞을 가로막는 게 많은지... 꿈속에서조차 시원시원하게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고 그나마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찾아간 공장에서 개한테 붙들려 면접도 못 보고 도망 나오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헛웃음 나는 일이다.
봄날 개꿈치곤 그냥 무시하기 어려운 꿈이다. 그래도 내일은 무언가 결실이 있겠지. 아이랑 직장 구하면 사주겠다고 약속한 게 너무 많아서 빨리 일을 해야만 한다.
내일도 허탕 치면 어쩌나..... 비나 오지 않으면 그 바닷가 음악 분수 앞에서 졸음이 올 때까지 놀다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