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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3>

Why Worry

by 자 작 나 무 2003. 8. 19.
2003. 8. 19
6년간 한 주인이 해주는 하숙 밥을 먹었다. 한 번 무언가 정하면 적응하여 맞추어 가도록 노력한다. 자기 집이 아닌 바에 남의 집에서 살기에 남이 해주는 밥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에 정들면 내 집이리라 여겨서였다.

그 하숙집은 할머니 두 분이 함께 음식 준비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 분인데 할머니는 두 분이어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하숙집 선배들이 곧 그 할머니 두 분의 관계가 소위 first와 second의 관계라는 것을 킥킥거리며 일러주었다.

연세가 제법 드셨는데도 두 분은 겉보기만큼이나 생각이 다르신지 가끔 티격태격에 토라지시기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의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두 할머니를 거느리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은 나도 속으로 웃었지만 정작 그 이유를 알고 보니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큰할머니께서 딸만 낳으신 까닭이었다. 신기하게도 둘째 할머니는 아들을 셋 낳으셨다. 그래서 생활에 실권을 쥐고 계신 것을 보고 늘 큰할머니께 뭔가 더 잘해드리고 싶고 안쓰러운 맘이 들었었다. 딸을 낳은 것은 그 할머니의 잘못이 아닌데 늘 뒷전으로 밀리고 결혼생활 내내 얼마나 참고 눈물도 많이 흘리셨을까 하는 생각에 주름진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번거롭고 고약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정작 나도 한때는 딸보다는 아들 낳기를 바랐다. 내가 품었던 불만을 내가 낳은 딸 아이도 느끼고 자랄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나도 딸을 낳았다.

아이랑 저녁 무렵부터 밤늦게까지 음악이 흐르는 조명 분수대 근처에서 함께 놀다 돌아왔다. 내가 편안하게 잘 듣던 팝송들이 차분하게 깔려서 조명과 함께 어우러진 분수를 보는 것이 마냥 꿈결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도 분수대 근처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물에 흠뻑 젖어서 달려와서 내게 와락 안겨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또 한 바퀴 휘돌고 다시 품으로 달려들고 그러기를 반복하더니 손을 끌어 함께 음악에 맞춰 춤까지 추자는 걸 보니 함께 밖에 나와 있는 것이 무척이나 좋았던 모양이다.

어지간히 시간을 보내고 일어서려는 순간 '다이어스트레이츠'의 Why worry가 흘렀다. 멈칫멈칫 일어서던 걸음을 돌려서 그 곡이 끝날 때까지 분수대 주변을 아이와 함께 뛰놀았다.

둘 다 얼마나 물을 맞았던지 옷은 물론이요 긴 머리가 다 젖을 지경이었지만 늘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나를 사랑해주는 아이랑 함께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가슴이 뛰어서 축축한 느낌도 잊고 마냥 즐거웠다.

'다이어스트레이츠'의 노래는 하숙집 건너편 내가 쓰던 방에서 문을 열면 마주 보이는 옆집 남학생들이 자주 크게 틀어놓던 앨범 속에 들어 있던 곡이라 들을 때마다 그 기억을 하게 된다.

저녁을 먹고 난 즈음이면 멋진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려주던 그 집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하숙생, 그러나 무척이나 동안이었던 그 남자의 미성으로 기억되기도 하던 노래. 그가 애인을 데리고 하숙집에 나타나기 전까지 룸메이트였던 언니와 함께 관심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그 남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문만 열어놓으면 담을 넘었던 탓에 그 특이한 이름 알프와 치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모습은 한참을 생각해야 떠오르지만, 항상 별명을 불렀던 옆집 하숙생들의 특이한 별명을 두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방안에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란히 붙어 있던 2층이어서 한 발짝만 살짝 뛰면 옆집으로 쉽게 넘어갈 수가 있어서 나중엔 음악 때문에 친해져서 가끔 초대해서 차를 함께 마시기도 했다.

그런 잔잔한 기억들이 재생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동안 복잡하고 머리 아픈 생각들이 잦아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참을 음악 속에 그즈음 특별한 일은 없었으나, 행복했던 일상들 속에 있었던 것을, 오늘처럼 아이랑 자주 다니는 산책길에 느끼는 작은 행복감도 그와 비견해서 어쩌면 더 큰 행복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스치는 그 느낌도 그렇게 편안하고 좋았는데 아이는 아직 한참을 내 품에서 지낼 것이니 간혹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 스치는 이런 기분들도 충분히 누리고 지나야 할 것 같다.

많은 불협화음 같은 요소들이 뒤엉켜져 있는 현실 위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라도 행복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내 심장이 온전함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늘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감정들을 아이는 느끼는 대로 내게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끊임없이 느끼게 해주고 표현해주는 사랑을 아이는 나보다 더 많이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나를 닮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내게 딸 아이는 유일한 희망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에 몹시 불만이 많았지만, 생명을 태중에 품었다 낳을 수 있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제공하는 근원이 되었으며 바라는 것 없이 한없이 베풀 수 있는 사랑을 나도 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것이 여자로 태어난 덕분이니 불만 삼을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다만, 도덕적인 차원에서 해결돼야 할 성적 대결의 구도를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는 열악한 의식구조의 개혁이 아직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에 내 아이뿐만 아니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간으로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억압과 속박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게 조장하는 이것이 사라질 수 있도록 나도 무언가 노력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딸만 낳았다는 이유로 수모와 내침을 당해야 하는 부조리한 남성 우월적인 사고의 틀은 점차 무뎌지고 있으나 반드시 해체되어야만 한다. 정자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성에 예속되어야 하는 호주제도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아이가 자기의 성씨를 인지하기 전에 바꿀 수만 있었다면 바꾸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라서 늘 성과 이름을 붙여서 부르는 아이를 볼 때 늘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그들은 사창가에서나 스치는 여인들에게 나누어준 정자에 대해서도 다 책임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전통적 가족관의 파괴라 하여 결사반대하는 그분들의 정자는 다 족보를 지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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