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9. 14
그렇게 해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방안까지 밀고 들어올 것이라는 것도, 지금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생을 살게 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계절이 아닌 때에 피는 꽃이 없듯이 때를 기다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이치처럼 인생의 꽃도 그러할 것이라 믿어왔고,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지금이 이 노선을 지나쳐야 할 때여서 그럴 것이라 여겨왔다.
그 고통이 극심하거나 나 아닌 타인에게까지 파급효과를 미칠 때 느끼는 통증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을 따름이다. 매미가 성충이 되어 한여름을 울기 위해 4~6년을 땅속에서 유충 상태로 지낸 후 번데기가 되었다가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변태기를 거치고 그다음에야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어 나무 위에서 그토록 우는 것이라 한다. 이렇듯 성충이 되는 과정은 불사와 재생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매미의 여름 인사는 끔찍하리만치 극진했다.
미칠 듯이 쏟아지던 비, 바람, 거대한 바다의 폭행, 공포, 다급함, 폐허.......
그래도 그 짧은 하룻밤의 일이 내게 깨우쳐 준 것이 많다. 친구의 의미와 내 안일함과 소원했던 모친과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생겼고 딸 아이가 난장으로 만든 방 자리와 벽지를 다시 바를 기회가 생겼다.
꼬박꼬박 한 푼이라도 내었던 수재민 돕기 성금의 혜택을 나도 과연 적절한 때에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웃의 온정이 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청소 때문에 아이를 맡겼던 집은 이제 갓 돌이 지난 어린 딸아이부터 아이가 셋이다. 그래도 이른 새벽부터 아이를 맡아주었고 우리 집 아이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침수된 집 다른 아이까지 아이 다섯을 그 좁은 아파트 안에서 돌봐주고 그것도 모자라 침수된 집을 치우느라 끼니도 챙길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의 다른 이웃집에 그 와중에 라면을 끓여서 갖다주고, 또 남는 기운으로 막내딸 아이가 자는 동안 다른 이웃집 청소를 해주러 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당한 일 아니니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웃 걱정에 손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억척스레 하고 몸살을 앓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 정도는 못되어도 더 인정스럽게 살아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속내는 깊어도 때론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많으나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얕은 지식만 머리에 쩔그렁거리고 다니는 지성은 변태와 다름없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가.
不死 와 재생의 상징으로 여기는 매미의 거대한 울음이 파도를 이용해 생의 현장을 덮치고 엔진도 완성되지 않은 배를 진수하여 띄워놓은 수백 미터짜리 유조선을 뭍에 바싹 끌어다 놓은 그 힘은 분명 마지막 발악의 징조일 것으로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중반을 뒤흔들어놓은 갖가지 고난에 마지막으로 더해줄 고통의 요소 중 마지막일 것이라고 여기며 매미가 땅속에서 유충으로 견뎌내는 긴 시간만큼 나도 여태 버티고 견뎌왔으니 이제 나도 껍데기를 벗어야 할 때가 되었으리라는 강력한 자기 암시를 해본다.
허물을 벗고 재생과 부활, 탈속의 상징이 되는 매미의 환골탈태를 나도 해내고야 말 것이다.
그렇게 해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방안까지 밀고 들어올 것이라는 것도, 지금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생을 살게 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계절이 아닌 때에 피는 꽃이 없듯이 때를 기다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이치처럼 인생의 꽃도 그러할 것이라 믿어왔고,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지금이 이 노선을 지나쳐야 할 때여서 그럴 것이라 여겨왔다.
그 고통이 극심하거나 나 아닌 타인에게까지 파급효과를 미칠 때 느끼는 통증을 제어할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을 따름이다. 매미가 성충이 되어 한여름을 울기 위해 4~6년을 땅속에서 유충 상태로 지낸 후 번데기가 되었다가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는 변태기를 거치고 그다음에야 다시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어 나무 위에서 그토록 우는 것이라 한다. 이렇듯 성충이 되는 과정은 불사와 재생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매미의 여름 인사는 끔찍하리만치 극진했다.
미칠 듯이 쏟아지던 비, 바람, 거대한 바다의 폭행, 공포, 다급함, 폐허.......
그래도 그 짧은 하룻밤의 일이 내게 깨우쳐 준 것이 많다. 친구의 의미와 내 안일함과 소원했던 모친과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생겼고 딸 아이가 난장으로 만든 방 자리와 벽지를 다시 바를 기회가 생겼다.
꼬박꼬박 한 푼이라도 내었던 수재민 돕기 성금의 혜택을 나도 과연 적절한 때에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웃의 온정이 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청소 때문에 아이를 맡겼던 집은 이제 갓 돌이 지난 어린 딸아이부터 아이가 셋이다. 그래도 이른 새벽부터 아이를 맡아주었고 우리 집 아이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침수된 집 다른 아이까지 아이 다섯을 그 좁은 아파트 안에서 돌봐주고 그것도 모자라 침수된 집을 치우느라 끼니도 챙길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의 다른 이웃집에 그 와중에 라면을 끓여서 갖다주고, 또 남는 기운으로 막내딸 아이가 자는 동안 다른 이웃집 청소를 해주러 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당한 일 아니니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웃 걱정에 손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억척스레 하고 몸살을 앓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 정도는 못되어도 더 인정스럽게 살아야 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속내는 깊어도 때론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많으나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얕은 지식만 머리에 쩔그렁거리고 다니는 지성은 변태와 다름없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게 무엇인가.
不死 와 재생의 상징으로 여기는 매미의 거대한 울음이 파도를 이용해 생의 현장을 덮치고 엔진도 완성되지 않은 배를 진수하여 띄워놓은 수백 미터짜리 유조선을 뭍에 바싹 끌어다 놓은 그 힘은 분명 마지막 발악의 징조일 것으로 생각해본다.
내 인생의 중반을 뒤흔들어놓은 갖가지 고난에 마지막으로 더해줄 고통의 요소 중 마지막일 것이라고 여기며 매미가 땅속에서 유충으로 견뎌내는 긴 시간만큼 나도 여태 버티고 견뎌왔으니 이제 나도 껍데기를 벗어야 할 때가 되었으리라는 강력한 자기 암시를 해본다.
허물을 벗고 재생과 부활, 탈속의 상징이 되는 매미의 환골탈태를 나도 해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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