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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7.29

by 자 작 나 무 2024. 7. 29.

2024-07-29

 

드디어 현실 직시해야 할 문제가 하나둘씩 드러난다.

일주일 지나는 동안 얼마나 충전했는지 알 수 없는 내 몸과 마음을 이제 그만 다독이고 다시 일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지했다.

 

*

뭔가 떠오르면 그대로 앉은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이야기하던 내 블로그는 이제 단발적인 기억을 옮기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을 하지 못한다. 돌아서는 순간 조금 전에 흘러나왔던 생각이 기억나지 않는다. 순간순간 기억이 프로그램처럼 흘러나오다가 멈춘다.

 

삼천포 그 공원에서 아주 지쳤을 때 쉬던 나무 의자가 떠오른다. 편백숲에 누워서 쉴 수 있게 만들어놓았던 그 나무 의자에 누워서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 보이던 하늘을 보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립다고 여겼던 바다는 지나는 길에 한 번 보고 나니 그리움이 잠잠해졌다.

 

브리엔츠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마을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호수 둘레길 따라 난 길을 걷는 상상을 해본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빙하수 녹은 물 냉기가 담근 손끝에서 아리던 튠 호수, 그 옆 브리엔츠 호수.

 

브리엔츠 호수

 

딸 친구들 몇몇이 여름을 유럽에서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딸이 그곳에 가서 보낸 여름 한철의 기억이 아련하면서도 그리운 모양이다. 언제쯤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다음엔 꼭 예쁜 옷을 사 입고 가서 예쁘게 사진 찍어서 남기겠다는 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싶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맞추기 어려운 것은 시간, 그다음은 비용. 그럼 시간만 맞출 수 있으면 그냥 떠날 수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선 참 간이 크다.

 

건강하면 할 수 있는 거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상태로 느긋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

딸이 올겨울에 운전 면허를 딴다고 해도 운전 실력이나 경험이 적어서 여행 가면 운전은 오롯이 내 몫이 될 거다.

 

*

어제 오후에 헤나가루를 개서 머리카락에 바르고 거실에서 몇 시간이나 멍 때리고 나니 늦게야 기운이 돌아왔다. 해진 뒤에 산책이나 가려고 냄새 고약한 헤나가루를 씻어내고 얼굴에 뭘 좀 발랐더니

"어, 화장했네."

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그대로 나가기엔 내가 보기에도 무안해서 좀 발랐는데 어쩐지 내가 다른 의욕 있는 외출이라도 할 계획이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말 나온 김에 생각난 대로 뭐든 한 번 저질러 보기로 했다. 내가 누구든 지속해서 관계를 유지하고 만나게 된다면 내가 운전해서 다닐 수 있는 반경은 어디까지인지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남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더러 다녔어도 이곳보다 북쪽으로는 운전하기 무서워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거의 어스럼해질 무렵에 나서서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하니까 그대로 피로감이 엄습했다. 희한하게 그 동네로 향하는 길엔 남쪽으로 가면서 쉽게 들르던 휴게소 하나 없다. 한 번은 가도 여러 번은 어렵겠다. 이런 걸 내가 하기 힘든데 누군가에게 하게 한다면 그건 일종의 고문이 될 수도 있겠다. 대중교통이 쉽게 이어져서 오갈 수 있지 않은 이상은 난 이렇게 북진했어도 사람을 만나긴 어렵겠다.

 

천리안 서비스가 완전히 종료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문득 그 시절에 드나들던 정기 채팅방이며 또래 번개 모임에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차가 있었더라면 더 종횡무진 돌아다녔을까. 국내선 비행기를 얼마나 많이 탔던가...... 그래도 돌아서니 그렇게 다니면서 본 풍경 외엔 사람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순간 스쳐서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20대의 전설로 아득해져서 형체도 그려지지 않는다.

 

2주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생기부나 써도 일을 다 할까 말까 한 지점인데 마음이 밖으로 떠돈다. 4시 반 퇴근 시간 이후엔 어디든 내가 갈 수 있는 곳으로 떠날 수 있으니 돌아올 수 있는 거리만큼 떠날 수도 있다. 이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종의 반항적 자유 같은 거다. 생각도 하지 못하던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어제 그걸 현실화했다. 생각하고 바로 실행하는 것. 머뭇거릴 이유가 없는 것은 그냥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한다. 더 나갈 필요 없는 길에서 두리번거리지 않기 위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면 굳이 나서지 않기로 한다.

 

내가 달리고 싶은 길은 따로 있다. 머릿속으로 어디까지 달릴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또 해보겠다. 어느 날은 그 상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선까지 달릴 수 있다면 그날 바로 달려 나가야지. 해 지기 전에 지구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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