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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9. 15

by 자 작 나 무 2024. 9. 15.

2024-09-15

 

생각이 무거워서 힘들거나 아픈 때가 많아서, 최대한 불필요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 머리는 스위치를 꺼버리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멍한 상태로 멈춰버린다. 이런 상태가 '무기'의 상태인지 스스로 다 꺼버릴 수 있어서 다른 접속 상태에 가버리는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한때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방법을 찾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현실을 최대한 감당하기 벅차지 않을 정도로 설계하고 살아내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택했다. 

 

덕분에 내 삶은 돈 문제만 해결하면 그야말로 간결하다. 인간 관계도 넓지 않고, 주변에 탁하고 복잡한 사람은 잠시 스쳐서 지나갈 뿐 곁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 주고받을 게 없다. 조건이 맞으면 일어나는 연기의 법칙은 철저한 인과 관계에 의한 것이니 내가 의지를 갖고 원인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나와 남은 다르지 않으나, 삶의 형태는 다 제각각이니 집중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타인의 삶을 이해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볼 수 없다.

 

나에겐 딱히 다를 바 없는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휴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명절이어서 평소엔 하지 않던 인사도 나눠야 하고 선물도 주고받아야 한다. 대부분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는다. 이번엔 딸 친구가 미리 명절 선물을 보냈다. 작년 가을에 한 번 짧은 여행에 동행했던 딸 친구가 내 생일도 챙기고 명절도 챙긴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받고 적당히 답했다.

 

오늘은 몇 달 만에 누군가 내 안부를 물어왔다.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고맙지는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지만, 내가 타인을 챙기고 걱정해 줄 여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것을 고맙다고 인사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남들 하는 것처럼 비슷하게 흉내 내면서 사는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도 많다. 생활이 다르니 생각도 달라진 것인지, 생각이 달라서 생활이 달라진 것인지. 굳이 남을 비교 대상으로 두고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 맞게 그냥 이렇게 사는 거다. 굳이 뭘 피하거나, 굳이 뭘 애써 할 의향이 없다.

 

 

*

며칠의 연휴를 즐기다가 다시 출근해야 하는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서 오늘 오후에 느낀 나름의 여유가 어긋난 지축도 바로 세울 힘을 북돋울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해 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만큼 우리 삶은 여유와는 거리가 먼 이상한 세상에 사는 거다. 겨우 이 정도로도 감개 무량하다.

 

백수로 지내면서 생기는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이번에 선택한 백수 생활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의 크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평이한 상태에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던 것이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상태였다. 점점 나아질 거다.

 

*

갈증을 느껴서 벌컥벌컥 마시던 물은 이제 천천히 컵을 손에 잡고 마실 수 있게 됐다. 금세 굶어 죽지도 않을 텐데 조금 허기를 느낀다고 그리 급히 숟가락질을 할 필요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몸은 서둘러 물을 들이붓고, 숟가락을 빠르게 움직인다. 조금 더 지속해서 반복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생각의 흐름과 글이나 말이 흘러나오는 속도나 방향이 간혹 다를 때가 있다. 오늘처럼 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깨어서 읽거나 쓰는 일은 드문 일이다. 다시 생활 리듬을 출근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고 유지할 필요까진 없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렇게 늦은 시각엔 확실히 깨어 있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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