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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D-1

by 자 작 나 무 2024. 11. 22.

2024-11-22

 

엊그제 온라인으로 주문한 시계 건전지는 오늘 도착했다. Renata 364. 한 알에 4,000원 정도. 건전지 가격에 택배비 포함해서 아예 그렇게 가격을 정해놓은 것 같다. 미리 해체해 놓은 딸내미 시계에 작고 동그란 건전지를 끼워보니 바로 시계가 잘 간다.

그런데 뚜껑을 닫다 보니 시곗바늘과 시간을 표시하게 붙어있던 작은 쇳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내가 약간 힘을 줘서 잘 안 들어가서 딸에게 뚜껑을 닫으라고 줬더니 바닥에 놓고 힘을 확 주는 바람에 뜻밖의 사고가 생긴 거다. 오래된 시계여서 그렇다며 딸이 이제야 익숙한 그 시계를 꼭 준비해서 가겠다는 고집을 버렸다.

 

이미 전에 내가 차던 태양광 충전 시계를 준비해 줬는데 그게 알이 작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끝내 딸이 원하는 시계 건전지를 갈아서 줄 참이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을 알고는 군말 없이 다른 시계를 받아갔다.

 

진작에 수긍했더라면 헛돈 쓰고 헛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배터리 사러 다른 가게를 뒤지고 다니기도 했고, 시계 브랜드 매장 찾아서 조치원, 대전 두 곳이나 다녀왔다. 그 정도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이런 경험을 했으니 다음엔 대용품이 있는데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고집부리는 일은 하지 않으려니 생각한다.

 

 

*

평소에 늦잠 자고 아침을 먹지 않는 습관이 든 딸이 내일 아침에 간단하게 먹을 메뉴를 정하고, 오늘 저녁은 베트남쌈으로 간단하게 먹었다. 매운 음식이나 속에 부대끼는 음식을 먹고 나면 숙면에 방해되고 소화가 잘 안 되거나 탈이 날까 싶어서 저녁 메뉴가 신경 쓰였다.

 

마트에서 내일 도시락에 같이 넣을 과일을 사고, 상추와 오이를 사서 들어왔다. 부담스럽고 냄새나는 거 싫어서 밥은 싸지 말라고 하여서 점심은 과일과 간단한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메뉴, 라이스페이퍼를 뜨거운 물에 적셔서 새우 두 마리 깔고, 상추 올리고 그 위에 삶은 쌀국수를 적당량 넣고 오이를 곁들여서 돌돌 말아서 땅콩소스에 찍어 먹는다. 재료 준비가 간단해서 이 조합으로 베트남쌈을 자주 해 먹는다.

 

내가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다. 작년 겨울에 이 동네에서 제일 비싼 호텔에 숙박하고 시험장에 보내면서 올해는 집에서 바로 시험 치러 나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희한하게 이 동네에 그 과목은 한 명도 뽑지 않아서 다른 지역에 시험을 치게 됐다.

 

선발인원 발표되기 전후로 관찰한 결과, 이번엔 그냥 시험을 치기만 하겠다는 듯한 느낌이 역력했다. 그렇게 준비해서 경쟁자 많은 그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올해는 경험치 쌓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D-day가 지나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련다.

 

꼭 정형적인 틀에 맞춰서 시곗바늘처럼 정확하게 계획된 것 같은 인생을 살 필요는 없으니까,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변수에 맞춰서 다른 하루를 살고, 다른 한 달을 살고, 다른 한 해를 살아보는 거다. 미리 포기하는 게 아니라, 딸에게 꼭 합격하지 않으면 큰 잘못이라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게 할까 봐 조심스럽다.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나이기도 하니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준비는 잘 됐는지, 기분은 어떤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난 그저 내일 제시간에 잘 도착하게 시험 치는 장소까지 운전만 잘하면 그만이다. 내가 한마디 더 한다고 이미 지난 과정이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결과는 알 수 없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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