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1
욕구불만, 식욕 폭발, 제어 포기
오늘 저녁 내 상태는 아주 가관이다. 냉동실에 있던 고기를 꺼내서 삶아서 굽고, 양념장에 조린 고기 요리를 딸내미 저녁으로 한 상 차려주고는 맛본다는 핑계로 몇 점 먹다 보니 단짠단짠으로 입에 쫙쫙 붙는 양념맛 때문에 뒤늦게 식욕이 확 올라온다.
냉동실에 묵혔던 고기여서 버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맛있게 돼서 대충 먹고 하루 넘기려던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딸내미 간식으로 산 호빵을 하나 데워서 먹은 것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갑자기 탄수화물이 급 당겨서 냉동실에 있던 빵을 꺼내서 버터 발라서 구워 먹었다. 빵이 맛있는 건지, 내 입맛이 너무 좋은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음식이 맛있다.
당분간 억지로 살 빼겠다고 나를 굶기는 일은 포기해야겠다.
지난겨울까지 입맛이 써서 음식 못 먹던 사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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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지나면 오른쪽 이마 쪽에 몇 가닥 생긴 흰머리카락이 슬슬 올라온다. 천연 헤나가루로 한 염색은 흰 머리카락이 붉은색으로 염색되었다가 자연스레 4주 이내에 색이 빠진다. 화학 약품으로 염색하는 게 아니어서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 없다는 점은 좋지만, 매달 염색하는 건 성가시다. 식물가루여서 착색하는데 시간이 몇 시간씩 걸린다.
오늘 오후에 외출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염료를 반죽해서 머리카락에 바르고 몇 시간째 버텼다. 그 사이에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면서 감정 조율이 어려워지더니 갑자기 음식을 이것저것 먹게 됐다. 낮에 먹은 과일과 채소도 맛있었고, 저녁 음식으로 만든 고기도 아주 맛있었다.
큰 즐거움이나 대단한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어서 아무런 문제 없이 하루를 살아낸 것에 때로는 만족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대로 집안에 머물면서 소소하게 채워지는 하루로 조용히 늙어가기엔 너무 젊은 나이다. 계획을 세우고 저질러야지. 뒷감당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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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과 이야기하고, 만나지 않고 대화도 연락도 끊어본 적이 몇 번 있다. 이번에 세 번째다.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과 밑도 끝도 없이 대화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몇 번 나누다가 그대로 거짓말처럼 대화도 관계도 만남 없이 끝내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서 다신 못하겠다. 몸속에 있는 뼈마디가 하나씩 녹아서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냥 카페 게시판에 글이나 쓰고, 댓글이나 주고 받는 게 훨씬 후유증이 덜하다. 며칠째 이은 폭식의 원인이 이것이렸다. 외로운 것도 싫지만, 이런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뼈마디가 다 물렁물렁해진 기분이다.
이 정도만 해도 불편하고 허전한데 사람을 만나서 직접 대면하고 감정적으로 뭔가 주고받다가 헤어지게 되면 얼마나 힘들까.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대상은 어떻게 찾아서 어떻게 만나야 좋을지 모르겠다. 난 이렇게 딸이랑 살다가 적정선에서 분가하고 혼자 늙어가는 거 정말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