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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시스템 복원 실패, 조문

by 자 작 나 무 2024. 12. 12.

2014-12-12

 

어제 괜히 시스템 복원 명령을 내려놓고 한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고 내내 기다리다가 오늘 아침에 깨어난 뒤에도 컴퓨터는 레지스트리를 복원 중이라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24시간이 지나도 안 되는 것으로 보아 그대로 둬서 복원이 될까 싶어서 복원 명령을 강제 종료하는 방법을 찾아서 전원을 꺼버리고 다시 켰다.

 

프로그램을 정리한다고 손댔다가 애초에 실수한 것은 바탕 화면에 깔아놓은 자주 쓰는 프로그램 아이콘이 홀랑 지워진 게 문제였다. 아이콘이야 복구시키면 그만이었는데, 문서 정리할 때 가장 자주 쓰는 한글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겨서 다시 설치하다 보니 인증키가 없다. 옛날에 분명히 돈 주고 사서 인증키를 어딘가에 저장했는데 이사하면서 기억이 뒤죽박죽 되어서 도무지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어제 컴퓨터 구동 될 때까지 하루 기다리느라고 날렸고, 오늘도 그러할 것 같아서 이럴 때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어제저녁에 같은 과 동기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을 받았다. 내일 발인이니 오늘은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직장은 매번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구조여서 1년 이상 같이 근무할 일이 없는 게 현실이니 특별히 친한 사이 아니면 대소사를 챙기지 않는 사무적인 관계로 남는다.

 

내 주변 지인 중에 그나마 자주 보지는 못해도 오래 보아야 할 그룹 중에 대학 동기는 챙겨야겠다. 졸업하고 울산으로 발령받아서 거의 오가는 일 없이 25년이나 연락이 끊어졌던 대학 동기들을 우연한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나마 그 뒤에도 한 해에 한 번씩 모임 하는 날이 맞지 않으면 회비만 내고 그냥 지나간다. 

 

풋풋하던 그 시절엔 그래도 좀 친했던 친구였는데 너무 무심하게 오래 떨어져서 지내서 예전과는 아주 다른 느낌으로 남은 대학 동기들. 단톡방이 생긴 이후에 처음 받은 부고다. 쉬지 않고 2시간 반 달려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워졌다. 경기도에서 온 친구 한 명과 장례식장과 멀지 않은 지역에 사는 동기 둘에 상을 당한 친구까지 다섯 명이 모였다. 정원이 10명이었는데 전국에 흩어져서 살면서 다섯 명 모였으면 많이 모인 거다.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종종 단톡방에서 인사를 나누거나 사진을 띄워주면 보기는 했어도, 대학 다닐 때 보고 나이 들어서는 처음 만났다. 그래도 이상하게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30년이란 긴 공백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중간에 뜸했거나 말거나 이런 게 친구 사이인가 보다.

 

경기도에서 조퇴하고 그곳까지 버스 타고 왔다가 다녀간 친구가 나는 대학생이었을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해서 나도 놀랐다. 나도 그 친구를 보고 너무 변하지 않아서 놀랐는데, 우리끼리 30년을 속이는 빤한 거짓말 같은 인사를 나눴다. 옛날에 말랐을 때보단 적당히 살이 붙어서 훨씬 더 예뻐 보였다.

 

경기도에 시험 쳐서 무슨 방송국 PD와 결혼했다고 해서 내심 부러웠다. 사람이 사람을 잘 만나려면 역시 넓은 도시에 가야 하는 것인가 보다.

 

나이 오십 넘어서 이제야 도시에 와서 살아본들, 이젠 무슨 소용 있으랴. 딸이 나처럼 인연을 만나지 못하고 고립된 삶을 살게 될까 봐 하도 걱정해서 서울에 가지 못하면 행정수도에라도 들어가서 살고자 해서 이사했지만, 이런 변화가 우리 삶을 어떤 길로 이끌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번 가고 싶어도 멀어서 가지 못하던 세미나에 계절마다 참석할 수 있게 된 만큼 우리의 북진은 앞으로 천천히 조금씩 새로운 일을 만드는데 한몫하리라 기대해 본다.

 

*

친구 아버지는 몇 해 암투병 중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친구도 직장 생활 시작하고 어느 즈음에 암 걸려서 오래 고생한 것으로 안다. 어쩐지 마음이 쓰여서 얼굴을 한 번 보고 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형제자매가 많아서 좋아 보였다. 아, 딸이어서 절은 하지 않고 안 받더라. 

 

그럼 내 장례식은? 자녀가 딸 뿐인데 내 딸이 상주가 되지 못한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중에 나이 좀 더 들면 딸과 의논해 봐야겠다. 우리를 성별만으로 차별하는 유교적 전통을 꼭 따를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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