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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12. 15

by 자 작 나 무 2024. 12. 15.

2024-12-15

 

점심 때가 훌쩍 지나야 겨우 일어나는 딸이 어쩐 일로 일찍 일어나서 씻고 단장을 한다. 며칠 전부터 오늘 점심 약속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잊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역으로 이사한 뒤에 이 지역 사람들이 랜덤으로 모여서 대화하는 단톡방에 들어가서 대화를 시작하고, 종종 그들과 만나기로 했다고 대전 시내에 다녀오곤 한다.

 

어젯밤 늦게 딸이 좋아하는 식자재를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낮에 도착했다. 딸이 일찍 약속 때문에 나간 뒤에 동네 마트에서 배송한 재료를 문 앞에서 받아서 집으로 들고 들어왔다. 저녁엔 돌아올테지만 순간 이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딸이 없이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먹겠다는 생각도 의미 없고, 다른 많은 것이 함께 나눌 사람 없이는 의미 없는 일로 치부하는 내 성향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불특정 다수를 위해 남은 삶을 불태울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주변에서 가까이 안정감을 주는 가족과 삶을 나누고 그 기반 위에서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은 게 내 바람이다. 딸과 전적으로 함께 하는 삶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다. 지금은 임시 동거 상태인 거다.

 

이 허전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아무나 만나서 그 자리를 내줄 생각은 없다. 어떠한 명분이든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어수룩한 감정에 빠져서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냥 같이 산다라거나 그런 허술한 이유라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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