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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4>

가지 볶음

by 자 작 나 무 2024. 12. 22.

2024-12-22

 

어제저녁에 달걀과 김 사러 마트에 갔다가 가지 한 봉지를 사 왔다. 딸이 가지를 식탁 위에 그대로 뒀다. 냉장고가 작아서 몇 가지 채소가 들어가고 나면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 사실을 잊고 잠들었다가 깼는데 식탁에 가지가 봉지째 그대로 있어서 눈에 띄었다.

 

냉장고에 넣었더라면 내가 가지를 사놓은 것도 잊고 뭘 먹을지 고민했을 텐데 눈에 띄어서 가지를 큼직하게 잘라서 마른 가루만 입혀서 튀겼다. 파를 볶으면서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진간장, 맛술, 굴소스를 넣고 볶아서 튀긴 가지에 소스를 덖어서 가지볶음을 만들었다.

 

딸이 냄새를 맡고 거실로 쪼르르 나와서는 입맛을 다신다. 뭐든 나중에 먹는다고 먼저 말하고 제 방에 쏙 들어가는 게 전문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밥도둑이라며 가지볶음에 밥을 아주 맛나게 먹고는 가지볶음이 더 없느냐고 찾기까지 한다. 작년까지 먹어도 살이 쑥쑥 빠질 때부터 한때 음식 맛이 이상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뭘 만들어도 맛있다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내 몸의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맛을 잘 못 느끼다가 이제 짠맛 단맛 구분이 확실해지니까 딸 입에 맞는 음식을 다시 해내게 된 거다. 혼자 살 때는 최대한 음식을 싱겁게 하고 조리를 최소화한 음식을 주로 먹다 보니 내가 만든 음식이 싱거워서 제 입엔 어색했던 모양이다.

 

가지가 허물허물해지는 것만 조절하면 팔아도 되겠다고 극찬을 해서, 조만간에 또 가지 요리를 해야 할 판이다. 밥이 절로 들어간다는데 물릴 때까지 해줘야지.

 

내가 자랄 땐 가지를 쪄서 무치는 것만 먹어봐서 이렇게 굽거나 튀겨서 먹는 조리법은 상상을 못해봤다. 딸에게 가지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맛으로 각인되어서 가지를 보면 늘 튀겨서 만든 음식부터 떠올릴 거다. 튀겨서 볶으면 이렇게 맛있는 걸 왜 데쳐서 흐물흐물하게 먹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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