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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5>

1. 10

by 자 작 나 무 2025. 1. 10.

2025-1-10

 

1년 전에 급히 이사하면서 정리하지 못하고 들고 와서 그대로 거실에 쌓여있던 짐 정리 시작. 1년 동안 한 번도 손대지 않은 물품이 거의 대부분이니까 다 버려도 될 것 같긴 한데,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며칠은 고민하지 싶다. 결코 사고 싶지 않았던 실내 운동용 자전거가 한쪽에 있고, 작년에 이사한 뒤에 온몸이 너무 많이 아파서 얼떨결에 마트에서 파는 안마의자도 냉큼 들고 와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물건을 버리는 일도 해야하고, 식탁에 앉을 때마다 식탁에 생긴 얼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반복하니까 이 큰 식탁 상판을 사포로 갈아내고 색을 다시 입히고 바니쉬를 몇 번 칠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그간은 항상 뭔가에 쫓기는 것 같아서 하지 못했는데 이제 추워서 나갈 데도 없고, 이런 때 집안에 콕 틀어박혀서 하기 좋다.

 

엊그제부터 계속 어깨가 저리다.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거나, 딸이 말하는 것처럼 단백질 부족이거나..... 정말 오랜만에 거의 1년만에 딸이 어깨를 주물러줬다. 딸은 오늘 낮에 대전에 친구 만나러 나갔다. 딸이 낮에 집에 없는 시간이 드무니까 이런 때 혼자 있으니 역시 뭔가 할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침대에서 깔던 침구도 좀 빨아놓으라고 내놓은지가 언제인데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우리가 나눈 살림의 영역 중에 결코 내가 손대지 않는 것은 쓰레기 분리수거와 배출, 세탁기 돌리는 것. 이사 온 뒤에 1년 동안 단 한 번도 혼자 쓰레기 버리러 1층에 내려간 적 없다. 세탁기야 종종 돌리지만 확실히 딸이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분류해 놨다.

 

내가 손대기 시작하면 집안일을 또 전부 다 내가 하며 살아야 하니까 일절 하지 않고 버티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 설거지는 아주 하기 싫을 땐 손대지 않고, 딸이 일을 미루고 내 기운이 남으면 한다. 음식을 하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고, 딸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조리는 딸에게 시킨다. 국 끓이고 나물 무치는 건 내가 하고, 생선이나 고기 굽는 건 딸이 하는 식으로.

 

*

그냥 근육통은 아닌 것 같은 신경통에 시달리다가 진통제를 먹고 조금 약기운이 도니까 움직이고, 뭐든 한다.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게 몸 아픈 거다.

 

이 즈음되면 추워서 수도 배관이 얼어서 꽤 애먹었는데 아파트로 이사한 뒤에 문만 닫아놓으면 그때 살던 집에서 엄청난 비용을 써서 기름보일러 돌리고, 온풍기까지 틀어서 유지했던 실내온도보다 높다. 

 

이래서 다들 아파트, 아파트 하나보다. 

 

지난달 말에 살던 동네에 가서 그 집 앞을 지나다 보니 건물에 보수 공사를 대단하게 해서 한눈에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겠다 싶었다. 새 건물 하나 짓는 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보수 공사에 쓴 주인이 얼마나 약 올랐으면 우리가 1월에 이사 나갔는데도 2월에 나온 전기세를 내라고 찍어서 보냈더라.

 

19년 몇 개월, 거의 20년을 그 집에서 살았고, 집주인이 바뀌긴 했지만 그렇게 월세를 받고 살았으면서 우리에게 하는 것 보면 참..... 별로였다. 예고 없이 전기 끊고 공사하고, 예고 없이 단수해 버리고. 자기네 집으로 들어가는 배관은 얼지 않게 해 놓고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 배관은 얼거나 말거나 십수 년 그렇게 내버려 뒀다.

 

오래 살아서 정든 곳이고 내 딸의 유년 시절 기억이 고스란히 남은 곳인데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남아서 다시 그 동네 가도 들르지 않을 것 같다. 다 입장이 다르니 내 입장을 모를 수도 있다지만, 내 입장에선 그랬다. 그전에 딸이 여섯 살 때까지 살던 집주인도 그런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매정하지 않아서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곤 했다.

 

태풍 매미 때 자는 우리 모녀를 깨워서 피난하게 알려준 그 댁 아저씨께 언젠가 들러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드려야겠다. 아주 오래되었고, 지나간 일이지만 그날 그 시간대에 우리를 챙겨주지 않았더라면 해일에 휩쓸려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땐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 생각까진 못했고, 이웃에 사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웃에 살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어떻게 보면 그 아저씨 덕분에 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았다.

 

오랜만에 혼자 조용한 집에서 자리에 앉으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그 방향으로 흘러가서 쏟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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