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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0~2024>/<2025>

짐정리를 하다가

by 자 작 나 무 2025. 1. 14.

2025-01-14

작년에 들고 온 이삿짐 중에 오랫동안 쓰던 해묵은 수첩이 수십 개 있어서 버리지는 못하고 상자에 담아서 한쪽 구석에 모아둔 것이 있었다. 오늘 드디어 그 종이 상자에 든 물건을 꺼내서 조금 더 튼튼한 상자로 옮겼다. 내용을 확인하고 사진 찍어서 남기거나 블로그에 옮겨 적고 버릴 계획이었는데 어쩐지 그럴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서 오늘에야 그 상자를 열었다.

 

그런데 막상 상자 정리하고 거실에 바리바리 쌓았던 짐을 풀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를 한 번 하고 나니 더 옛날 물건을 만질 기운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것 보아서 무엇하나 싶은데, 그냥 버리기는 아쉬운 정말 애매한 물건이다. 하나씩 들추다 보면 내가 왜 그런 메모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고, 다시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기록도 있을까 싶어서 망설이는 모양이다.

 

거실 한쪽벽엔 이사하고 여름쯤에 새로 사들인 서랍장이 하나 있고, 그 옆엔 딸이 어릴 때부터 치던 전자 피아노가 있다. 십수 년 전에 140만 원가량 주고 샀으니 꽤 값나가는 물건에 속한다. 손때 묻은 그 전자 피아노를 버리고 새 피아노를 사서 들일 일은 없다. 버리게 되면 우리 집과 피아노와 관련한 인연은 끝나는 거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9년이나 학원 다니면서 피아노를 쳤고, 집에서도 그 피아노 앞에서 꽤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이사 와서 가끔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더니 손대는 꼴을 못 봤다. 그래도 대뜸 버릴 수는 없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도 조금 마뜩잖다. 작년 겨울에 전신이 아파서 끙끙 앓을 때 마트에서 안마의자를 보고 딸이 사자고 해서 들고 왔다. 그게 자리를 차지하면 얼마나 불편할지 둘이 생각을 했지만, 그 당시는 내 몸이 자꾸 아픈데 제 손으로 주물러주는 걸 반복하기도 번거로우니 내 방에 그 의자 앉혀놓고 아파서 잠 안 오면 거기 앉았다가 자라는 거였다.

 

내 돈 내고 내가 산 물건인데도 딸이 종용해서 사서 꼭 저가 사준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올가을부터 쉬었더니 작년처럼 그렇게 아프진 않다. 깡마른 몸이 쑤시고 아파서 그냥은 잠들 수도 없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언제 그랬냐 싶기만 하다. 역시 너무 쉬지 못하고 일해서 쌓인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없으면 아쉬울 것 같지만 집에 공간이 적으니 자리를 확보하고 거실에 소파를 놓으려면 그 의자는 어디로 치워야 할 것 같다. 피아노가 맡은 자리도 애매하다. 서랍장은 높아서 그 위에 TV를 놓는 것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한 며칠은 또 고민해야겠다.

 

지금 내 방으로 쓰는 침실엔 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잘 들지 않아서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거실에서 여름을 난다. 여름에 잘 쓰던 토퍼도 크기와 두께가 만만찮아서 딱히 보관할 곳이 없다. 자리 차지하면 다 버리자는 딸과 어디든 잘 숨겼다가 쓰자는 내 생각이 충돌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1년이나 묵혔던 짐을 오늘 일부 버리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래도 남은 물건은 무작정 다 버릴 수 없는 것이어서 해결책이 필요하다.

 

잡동사니 상자는 물건 잘 간추려서 베란다에 내놓고, 옷상자는 마저 정리해서 침대 아래 서랍에 넣고, 문구 상자는 꼭 필요한 물품만 상자에 담아서 어딘가에는 보관해야 한다. 더 버릴 것을 찾아내는 게 최선이겠다.

 

거실에 소파를 놓지 않으면 딸은 제 방에 갇혀서 아이패드로 게임만 할 게 뻔하다. 그 상태를 조금 다르게 하려면 거실에 소파를 놓아야 한다. 나도 내 침대에 누워서 쉬는 것 외에 식탁에 잠시 앉는 것 밖에 하지 못하니 집이 좁다는 느낌이 강하다. 예전에 워낙 넓은 집에 살아서 이 방에 한 번 갔다가 저 방에도 한 번 갔다가, 주방과 거실 공간을 오가며 꼼지락 거릴 수 있었는데 여긴 오로지 내 방과 밥 먹을 때 앉는 식탁이 전부여서 어쩐지 부족하고 아쉽다.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하려면 쓰지 않는 것을 최대한 많이 버리고, 물건을 더 사들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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