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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25>/<2025>

2. 20

by 자 작 나 무 2025. 2. 20.

2025-02-20

 

불과 며칠 전, 금요일에 통영에 갔다가 면접 보고 바로 세종으로 돌아왔다. 지쳐서 잠들지 못하는 머리를 이고 누웠다가 다음날 급히 장을 보고 짐을 꾸렸다.

 

작은 차에 들어갈 만큼의 짐을 꽉꽉 채워서 일요일 낮에 달려서 다시 통영으로 갔다. 다음날부터 사흘 정도 일정이 있어서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지낼 수 있게 잠을 자야 하는데, 남편도 있는 친구네에 며칠이나 묵을 수는 없어서 급히 방을 구했다. 일요일이어서 가스관 차단한 것을 열어줄 직원이 오지 않아서 하룻밤 친구집에서 신세를 졌다.

 

짐을 좀 옮겨줄 딸도 동행해서 이틀 연이어 자는 건 민폐다 싶었다. 월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돌아오니 건물 주인과 가스회사 직원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에 일이 다 해결되고, 한동안 비어있던 방에 보일러를 틀어놓고 딸과 함께 우리가 한때 즐겨가던 밥집을 찾아갔다.

 

꽤 오래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밥집이었는데 그 사이에 폐업했다. 낙담해서 그다음 집을 찾아갔더니 준비한 음식이 일찍 떨어져서 밥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찾아간 곳은 월요일이어서 손님이 거의 없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 유명한 굴요릿집. 예상대로 주말에는 자리 잡기 어려운데 식당이 여유로워서 친절하게 가져다주는 굴코스 요리를 맛있게 먹고 일어섰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만 친절한 굴향토집. 음식은 내 입에 맞아서 매번 나쁘지 않다.

 

굴숙회를 딸이 맛있게 먹어서 기분 좋았다. 우리가 찾아간 밥집마다 문 닫은 바람에 꽤 헤매다가 들어갔더니 방바닥은 꽤 따끈한데 공기가 차다. 2022년에 삼천포에서 한해살이 하면서 샀던 토퍼를 짐 되고 자리 차지한다고 버리자고 한 것을 우기고 또 우겨서 뒀다가 이번에도 유용하게 잘 쓴다. 

 

수요일까지 새로 얻은 방에 딸이 함께 있으면서 내가 출근한 이틀은 고교 동창, 대학 동창을 차례로 만나고 다니더니 사흘째는 완전히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종일 잠만 잔 모양이다. 그렇게 지치고 씻지도 않은 딸을 차에 싣고 집에 돌아오니 밤 9시 반. 앞으로 금요일마다 집에 돌아오면 그 시각쯤 되려나......

 

일요일에 혹시나 방을 구하지 못해서 다음날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싶어서 관리자가 직접 전화해서 기숙사를 줄 수도 있다는 제안을 했다. 이미 방은 구한 뒤여서 선뜻 받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게 고마워서 기꺼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겠다는 각오를 더 단단하게 하게 된다. 나를 꼭 필요로 하는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감사하다.

 

매번 공무원채용신체검사, 마약검사를 해야 한다. 검사 비용만 해도 거의 7만 원. 꼭 필요해서 하는 것이겠지만 매번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게 번거롭다. 이제 이것도 그만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싶은데 다리 뻗을 자리가 없으니 그럴 수도 없다.

 

몇 달 쉬어서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었는지 며칠 사이에 나름 강행군을 했어도 버틴다.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올해가 마지막인 것처럼 내가 맡은 학생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담아 가르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

작년에 이사할 때 받은 케이크 교환 쿠폰을 오늘 가서 바꿔왔다. 딸이 좋아하는 레드벨벳 케이크로 바꿔서 이사 축하가 아니라 취업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 수없이 원서를 쓰고, 몇 번이나 면접에 떨어지는 과정을 함께 겪은 딸에게 조금 현실감각이 생겼기를 바란다. 결국 집 떠나서 먼 곳에서 밥벌이를 하게 된 내 선택이 쉽지 않은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음을 감안하여 올해는 더 열심히 공부해 줬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그 동네에 원서를 냈으면 너무 쉽게 그 자리를 얻어서 이 만큼 감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이 그곳이 아닌데 그 먼 곳에서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혼자 한해살이를 하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오래 살던 땅에서 멀리 떨어져서 바다가 종종 그립고, 친구도 보고 싶고, 익숙한 길을 걷고 싶었던 열망이 너무 커서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반복된 바람이 커져서 한 해 정도 더 머물면서 아쉬운 것을 해소하라는 뜻으로 풀어서 갈증을 녹이는 감사한 한 해로 살아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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