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3
어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동창회에 다녀왔다. 장거리 왕복 운전이 만만치 않았지만, 빠지기엔 아쉬운 유일한 정기 모임이어서 조금 무리한 기분으로 다녀왔다. 작년 모임은 내가 이 동네로 이사한 때에 열리기도 했고, 그 당시에 지칠 대로 지쳐서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년 모임은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
동기들 10명 중에 여덟이 모였으니 얼추 다 모인 셈이다. 하나 같이 안정된 삶을 사는 게 보기 좋았다. 내 삶이 가장 가볍고 불안정해 보였다. 가정에 협력자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삶은 원천적으로 다를 수밖에.
내 삶이 이렇게 기울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독립적이지 못하고 부모에 의존한 삶 밖에 알지 못했던 그 당시의 삶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모든 걸 부모가 관장하고 내 선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수동적인 삶의 지축 위에 있었다. 그 상태에서 부모의 부재는 갑자기 고아가 된 청소년의 혼란스러움과 다를 바 없었다.
내 삶을 꽉 틀어쥐고 있었던 올가미에서 풀려났으나 그 틀 외의 삶을 설계해 본 적 없는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항상 지시와 지도를 받을 수밖에 없던 형태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상태에서 내 비전은 시야가 좁고 얕았다. 실질적인 삶의 경험은 학교 생활과 공부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위험하고 빈약한 상태로 삶의 전반에 미칠 영향이 큰 선택을 해야 했는지 그 당시엔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주어지는 대로 내 삶을 살아낼 각오가 되었지만, 조심성 없이 무식해서 용감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동기들의 삶은 평범하고 평온해 보였다. 나는 나대로 평온한 삶이라고 자처할 때도 있지만 비교하자면 끝없는 정신 승리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삶을 바라보는 근원적 지평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내 삶을 객관화하는데 간혹 이런 비교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채찍질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특별히 더 나은 선택지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더 현명한 선택은 할 수도 있었다. 내 고집이 들어간 부분에서 실수도 많았다. 경제생활을 좌지우지하게 된 결정적인 실수는 종신직이었던 사립학교에 대학장 추천으로 들어가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 내 판단만으로 그만둔 것이었다. 그때 그 삶을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이 많이 달랐을 거다.
그런 후회 막급한 경험 덕분에 알량한 자존심이나 개인적 취향을 내세워서 삶을 위태롭게 하는 선택을 다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됐다. 올해는 이미 선택한 일을 잘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것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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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겠으나, 시작했으니 꾸준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다. 내 삶을 늘어지지 않도록 나를 채찍질하는 의미로 이 정도 노력은 더해야 한다고 자신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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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에게 내린 명령어가 제멋대로 바뀌어서 입력되고, 그 때문에 잘못 출력된 답이 오류 투성이로 뜬다. 돈 낸 거 아까워지는 순간이다. 다양한 AI 시스템을 잘 활용하게 되느냐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이상을 못하게 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내 문제는 항상 너무 잘 하려고 해서 생긴다. 좀 덜하면 아쉬우니까. 좀 못했다 싶으면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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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되고 위로가 필요할 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내 걱정 따위가 무슨 위로가 될까 싶어서 그 생각을 닫았다. 나도 받은 적 있으니 그런 마음이 들 때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상태를 알 수 없으니 적절하게 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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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댓글 붙이는 부류 때문에 댓글 기능을 닫았다. 똑같은 문구 복사해서 닉네임 바꿔가며 붙이고 링크를 유도하는 상업적인 댓글 붙이는 게 싫다. 귀찮아서 아이피 차단하고 댓글창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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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전까지 준비할 게 많은데 한동안 장거리를 오가며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정도로 지쳤다. 역시 쉬어야 뭔가 할 수 있는 거다. 올해는 얼마나 지칠지 조금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