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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꽃이 피었습니다.

by 자 작 나 무 2005. 3. 21.

 

 

매화꽃이 피었다. 엊그제 사 왔을 땐 봉오리만 조그맣던 매화는 방 안이 따뜻해서인지 콩알만 하던 꽃망울 망울마다 예쁜 꽃을 피웠다. 추운 겨울을 꿋꿋이 견디고 드디어 꽃을 피운 매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또 하루를 사는 자신을 보며 결국 이렇게라도 살아질 것이라면 그저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열심히 살아내는 것 외엔 없다는 것을 스스로 더 깊이 각인시킨다.

 

 

 

 

우리 집에는 이미 5년 전에 매화꽃이 피었더랬다. 변변한 세간살이 하나 없이 맨손으로 월세방에 살면서 주워 모은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8자짜리 장롱이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엔 냉장고, 세탁기도 없었고,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었던 우리 집에 번듯하게 들어온 새것 같은 장롱은 지영이를 업고 다닐 때 동생네가 살던 아파트촌에 버려진 것을 가져온 것이다. 

 

 

 

 

마침 그 동네에 뭔가 실어주러 온 트럭 기사에게 2만 원을 주고 집까지 실어다 달라고 부탁해서 아이 업은 채로 방안에 끌어다 모셔둔 것이 아직 건재하다. 그 가구에 있는 그림이 매화꽃이다. 매화는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강인함을 지닌 꽃으로 느껴진다.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제법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면서 인내해야 할 일이 많았던 내게 그런 모습을 가르쳐준 꽃이다. 

 

 

 

부러진 가지에 밴드를 붙여놨더니 거기에 맺혔던 봉오리에도 꽃이 피고 있다. 그래, 뚝 부러져 내동댕이쳐지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생명의 질긴 줄을 끌어당겨 기어이 꽃 피우고 열매 맺으리라는 결연한 각오라도 한 듯..... 대견하다.

 

나도 이대로 시름시름 젊은 날을 앓다가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치료를 몇 달째 받는 중에도 기침은 다시 시작되었고, 풍파와 조류에 휩쓸린 흔적은 쉬이 가실 기색이 없다. 그래도 단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어떤 상황에서건 열심히..... 그저 열심히 사는 수밖에는 아무런 답도 없다는 것.

 

내 생에 결코 화려한 꽃이 피지 않더라도, 바람이 속살거리는 가지를 붙들고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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