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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05>

매화축제에 갔다가.....<2005/03>

by 자 작 나 무 2005. 3. 14.

매화꽃 축제를 보러 간다는 핑계로 길을 나섰다. 지난 주말에도 갔었지만 갑자기 몰아친 눈바람에 차를 한번 세워보지도 못하고 그냥 내달려서 사진 한 장 남겨오질 못했었다. 이번에도 별 다를 바 없는 곤혹스러운 날씨였다. 바람 부는 강가에 서서 저 물길 끝닿은 어딘가에는 아직도 기억되고 있을지도 모를 희미한 옛 추억을 더듬는 마지막 여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들뜨고 한편으론 가라앉은 마음으로 물길을 더듬어 갔다.

 

광양 매화 축제는 섬진교 입구에서 교통편을 완전히 통제하여 마을로 들어가려면 강변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야만 했다. 주차하고 줄 서서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마을로 이동하는 시간이 줄잡아 한 시간은 걸렸다.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틈에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저 파란 하늘을 보면 눈이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싶은데 매화꽃이 날리는 것처럼 눈은 그렇게 조금씩 바람에 날려 내리기 시작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눈보라는 심해졌고 매화꽃은 드문드문 핀 듯 만 듯하여 청매실 농장에 올라가 매화꽃 핀 전경을 보려던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행사장에서 눈에 띄는 저들을 구경하다 사진 찍은 게 전부다.

 

 

눈이 바람과 함께 사납게 몰아쳐 시야를 가렸다. 행사장을 한번 돌아보지도 못하고 셔틀버스 타는 곳을 찾아 줄서기 바빴다. 여장을 한 호박엿장수가 신나게 가위를 두들기며 춤을 췄다. 이 추운 날씨에 고무신을 신고 화장까지 하고 춤추는 아저씨를 보며 사진만 찍기 미안해서 엿 한 통을 샀다.

 

맑았던 하늘은 온 데 간 데 없이 매화마을은 단숨에 설국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 지영이는 머리에 쌓이는 눈에 신기해 하면서도 춥고 매서운 바람에 눈을 뜨지 못했다.

 

 

눈꽃 축제에 온 것 같았다. 매화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으므로 볼 것도 없는 축제에 눈내리고 바람까지 거세어 손끝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행사장을 빠져나와 주차장에서 나가는 차들은 줄지어 서 있고 앞으로 나갈 기색이 없을 만큼 차가 밀려 있는 동안 강변에 핀 매화를 발견했다.

 

매화마을엔 피지 않았던 매화가 양지 바른 강변에 피어 있었다. 매화마을을 뒤덮을 만큼 그득 핀 매화를 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돌아오는 길의 하늘은 언제 눈을 뿌렸냐는 듯 말짱했다.

 

 

섬진강이여 나도 그대처럼 반짝이고 싶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은빛으로 분사하는 그 빛에 몸을 던지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물길은, 내게 전설 같은 추억으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그대 아는가. 내 언제 가슴 타는 사랑을 이야기했던가.

 

앓듯이 타는 심장을 돌아오는 길, 그대를 보며 눈시울 적시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언 10년이 흘렀고, 이젠 흔적조차 남지 않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중년이 되어버린 나의 눈빛은 여전히 철이 없는데, 세월만 무심히 쌓여 그대 흐르는 물길 곁에 머물러 모래톱이 되었는가.

 

지나간 사랑도 세월도 돌아올 수 없다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만 가는 섬진강은 내게 그렇게 속삭였다. 그저 추억이 되어 옛이야기가 될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