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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6>

7월 20일

by 자 작 나 무 2006. 7. 20.

2006/07/20 22:57

오늘은 먹는 것에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난 것으로 기억될 만한 하루였다. 아침 약속 시각보다 30분이나 학생이 먼저 도착했고 잠옷 바람에 집안 정리도 안 되어 있어 허둥지둥 학생을 근처 도서관으로 잠시 내몰고 부랴부랴 30분 만에 머리 감고 화장하고 청소하고 아침 챙겨 먹느라 어찌나 바빴던지.......

 

 

 

 

 

점심때 초복이라고 삼계탕집에 갔더니 한 시간이나 기다린 후에야 음식이 나왔다. 기다리는 동안 학생들은 휴대폰 꺼내어 열심히 게임하고...... 학생들은 손님으로 보이지 않는지 우리보다 한참 늦게 온 어른(?) 손님들 음식만 먼저 주는 바람에 심통이 났다.

 

 

오후에 일 마치고 지영이 데리고 바리데기네 근처에 있는 미용실에 지영이 데리고 갔다. 친구네에서 수다 한 사발 한 후, 우리 집 아래에 있는 찜집에서 대구뽈찜이랑 해물파전으로 늦은 저녁을 과하게 먹고 아직도 포만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요즘 애들은 기다리는 시간 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는 공통점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긴 기다림의 시간도 더러 겪었을 텐데 그때 난 뭘 하며 기다렸을까? 저녁 같이 먹으러 가기로 해놓고 친구랑 친구 아들이 한참을 내려오지 않아서 기다리다 지쳐 배가 몹시 고팠던 나는 계속 차 안에서 구시렁거렸다. 난 배고픈 시각을 넘기고 나면 거의 기운을 쓰지 못하고 급기야 화를 내기도 한다. 정말 한참 만에 친구가 내려왔다.

 

"야!!!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배고파 죽겠는데!!! 누구 굶겨 죽일 일 있어??"

저녁 먹고 우리 집에 잠시 들렀다 간다고 파란 방에 들어와 앉아서 이야기하던 중에

"이야....~ 벽지 바른 것 보니 보통 솜씨가 아니다. 이런 걸 어떻게 할 생각을 했니?"

"음..... 나 같은 사이코 아니면 이렇게 큰 방을 혼자 도배하겠다고 덤비겠니?"

 

그 말에 더 뭐라고 할 말을 잃은 친구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진 않았다. 말을 내뱉고 나니 내가 한 짓이 결국 사이코 짓이랑 별반 차이 없다는 뜻이 되고 말았으니 진짜 요즘은 사이코적인 기질이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자주 의심하게 된다.

 

중학교 동창이 하는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느라 잠시 풀었던 아이 머리 방울을 가방 안에 넣고 찾지를 못해 한참을 헤맸다. 친구가 나더러 심각하다고 흉을 보길래......

 

"그래, 내 상태가 좀 심각하다. 오죽하면 치매라고 하겠니? 나 치매 맞아......"

이런 정신머리로 학생들 공부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중증 치매에 히스테리 환자 같아진 나에겐 아무래도 적당한 휴식과 애인이 필요한 것 같다. 더 좋은 처방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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