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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4>

사랑스런 봄날

by 자 작 나 무 2004. 3. 30.

운동 시작한 것을 핑계로 먹고픈 음식마다 마다하지 않고 먹어댔더니 옷이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사다 재어 놓은 아이 간식거리(애 준다고 샀다는 건 순전히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를 배부른 줄 모르고 식후에 골고루 먹은 결과라고나 할까.....

 

몇 달 만에 로또복권 사러 갔다가 마침 그 가게에서 팔고 있던 먹음직스러운 생크림 케이크를 사다 놓고 껴안고 생각날 때마다 먹었더니 며칠 사이 체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버린 것이다. 체중계에 올라가기 전까진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이젠 폭식하듯 먹어대는 습관을 고쳐야 할 때가 된 듯싶다. 조금 더 체중이 늘면 그나마 맞는 옷이라곤 하나 없게 되는데 정신 차려야 한다. 으~~~~~

 

며칠 전 이른 아침 날아든 반가운 문자. 갑자기 맹장 수술을 하게 되어 예매한 국제음악제 공연을 못 보게 되었으니 나더러 대신 보라는 것이다. 순간 의아함과 동시에 눈이 반짝거렸다. 이 시골 같은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음악제 행사에서 나도 드디어 눈과 귀가 호사할 기회가 생겼구나 싶었다.

 

그런데.... 공연 시각이 저녁 7시.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두어 시간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어 끙끙 앓다 결국 그 티켓을 어머니께 양보해야만 했다. 사실 공연 티켓을 며칠 전부터 한 장 사드리려고 마음먹고는 있었지만 '탄둔 워터 패션'이라는 그 공연만은 나도 무척 벼르고 탐나던 공연이었던지라 아직 어린 내 딸을 어쩌지 못하는 게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게다가 좌석은 로열석이었다. 예매한 티켓을 내어준 친구분에게 공연을 본 소감이라도 짤막하게나마 전하고 싶었는데 공연장 앞에서 티켓만 건네주고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얼굴만 구경하고 왔는데 내가 뭘 어쩐단 말인가. 마침 주말을 끼고 온갖 봄꽃들이 공연장 주변을 화사하게 치장이라도 한 듯 시민문화회관 근처 공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윤이상이라는 이 지방 출신의 음악가가 아니었다면 이 작은 항구도시에서 열릴 까닭이 없는 국제음악제가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요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이라 기회가 생겨도 보지 않겠다는 택시기사의 말에 히죽 웃으며 돌아온 저녁. 내게도 아직 음악과 미술 공연... 그 모든 것에 대한 열망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대학 다닐 때 점심값을 아껴가며 사 모았던 클래식 CD며 테이프들이 지금은 보관용으로 가지고만 있을 뿐. 끼니를 걸러도 보고 싶어 하던 연극공연이며 음악회... 영화...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한다면 아마도 그냥 귀를 막아 버릴 것이다.

 

사치든 뭐든 나는 그게 좋은 것으로 예쁜 옷 사입고 곱게 치장하는 것보단 그런 정신적 사치에 해당하는 것들을 즐길 기회를 갖는 게 더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어제 밤새 비가 내리더니 맑게 갠 하늘, 밝게 비쳐드는 햇빛이 깨끗하게 청소된 듯한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아침을 맞았다.

 

공기가 너무나 상큼하고 비를 맞아 더 활짝 핀 산허리에 둘러 핀 듯한 산벚나무가 가슴을 뛰게 한다. 물오른 봄기운을 즐길 수 있는 이 작은 마음의 여유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삼월의 마지막 하루를 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음악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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