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03~2009>/<2004>

방콕 혹은 방굴러데쉬

by 자 작 나 무 2004. 4. 17.

열흘 남짓 동안 사진을 세 통이나 찍었는데 거의 다 아이들 사진이다. 화실 언니 사진, 내 딸  사진, 화실에 오는 아이들 사진 그렇게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 사진은 몇 장 찍었지만 거의 살진 돼지 모습 같아 보여 인터넷에 게재한 사진을 업그레이드하려던 계획은 아직 고심 중이다. 글도 엊그제 장황하게 썼다가 자판에 키 하나 잘못 건드려서 몽땅 날린 후론 블로그에 발길을 끊었었고....

 

그런데 또 주말이다. 뭔가 해야 할 일을 잔뜩 늘어놓았어도 손대기 싫은 주말이다. 지난 주말엔 전남 녹동항에서 바로 바라다보이는 작은 섬 소록도에 갔었다. 소록도.... 아주 어릴 때 머리까지 뒤집어쓴 이상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나환자들을 수용한 마을이라는 말만 전해 들은 소록도가 그곳에 있었다.

 

진주에서 순천행 버스를 바꿔 타고 순천에서 다시 고흥, 녹동까지 들어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녹동항에서 1박하고 아침에 비벼 뜬 눈으로 배 타고 들어가 한나절 봄볕 아래 딸 아이랑 사진을 찍으며 한가한 한때를 보냈던 그 섬에서 보았던 노란 나팔 수선화며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바람에 살짝 비처럼 내리던 화사한 정경으로 기억되는 그 섬엔 천형처럼 물려받은 나병을 앓는 사람들이 모여 산단다.

 

그들이 사는 곳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지만 개방된 지역은 공원화되어 그야말로 천국 같았다. 내가 정말 살고 싶은 곳을 그림처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거기서 찍은 사진이랑 최근에 화실에서 찍은 사진을 스캔해서 옮겨 놓는 것으로 봄날을 방콕하며 지내야 할 주말의 공포에 대적하려 한다.

'흐르는 섬 <2003~2009> > <2004>'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에 찬바람 부는 날  (0) 2004.05.17
어떤 갠 날  (0) 2004.04.19
사랑스런 봄날  (0) 2004.03.30
해평 열녀비를 지나며  (0) 2004.03.16
잊지 않을 것이다. 3월 12일 쿠데타를.....  (0) 2004.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