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뒤라 그런지 세상은 유난히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아침나절부터 부랴부랴 챙겨서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들러 신경치료한 이에 금속을 덮어씌우는 치료를 하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후 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내릴지 생각도 없이 무작정 버스가 움직이는대로 창너머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람이 제법 부는지 바다는 거친 잔물결들이 바람과 맞서고 있었고 멀리 보이던 풍경들도 시야가 맑아져서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아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그 속에 사는 사람들 중엔 자연의 섭리와 다른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는 것인지 가슴이 괜히 답답해진다.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동네에서 내렸다. 그리곤 또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마침 오늘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인파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온갖 물건들을 내놓고 파는 사람들을 보며 먹고 사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을 새삼들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속여서 욹어낸 돈으로 사는 인간도 있고......
장날이라 싸게 나온 부식품 몇 가지를 사서 검은 봉지 몇 개를 주렁주렁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맥없이 늘어진 인생행로에 들어선 것일까.....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또 하다보니 금세 내릴 곳에 다다른다.
늘 뭔가 손해보는 듯한 기분으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고 온통 날을 세우고 사람들을 끝없이 의심하고 내가 받은 상처들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는 그런 유치한 삶을 살고 싶진 않은데 내 가슴 골마다 깊어진 상처는 예전처럼 유순하고 어리숙하게 느껴질 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질 것 같지가 않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데 운없을 때 그 중 나쁜 사람 부류에 속하는 인간에게 걸려서 한 번 당한 것 뿐인데, 왜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남은 내 인생의 빛깔까지 잿빛이어야 하는가 그 여파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그로 인해 받은 정신적 피해는 정상으로 복구될 것인가. 정신적 피해로 생겨난 이 잡다한 질환들은 언제 몸에서 떠날 것인가. 나쁜 기억들은 언제 다시 재생되지 않고 잠잠해질 것인가. 벗어나고픈 많은 의문들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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