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큰엉 경승지
빼어난 해안 절경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성곽처럼 높고 길게 쌓인 기암 절벽의 양 끝에 바위동굴이 있다. 엉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그늘을 뜻하는 제주어.
올레길 5코스에 속한다.
친절한 네비게이션은 우리를 금호리조트 옆 주차장으로 안내해줬다. 오전에 에코랜드에 갔다가 느지막히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비도 내리고 다음 숙소인 서귀포까지 가야하니 다음 목적지는 숙소에 짐풀고 서귀포에서 오후 늦게라도 산책할 수 있는 코스를 찾아야했다. 미리 여행코스로 메모해온대로 결국 움직이게 됐다.
점심은 교래리에서 긴줄을 서서 맛집을 찾아갔지만 저녁은 간단히 김밥을 사서 먹었다. 나름 서귀포에서 이름났다는 김밥집. '오는 정 김밥' 미리 전화하지 않으면 절대 김밥 살 수 없다. 최소한 30분. 넉넉하게 1시간 전에 꼭 주문 전화를 해놓고 찾으러 가야만 한다. 미리 알고 전화하고 갔으니 망정이지..... 한 줄 2,500원.
여하간 그 집 김밥을 사서 바닷가 그늘막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김밥 속재료들이 기름에 튀겨져서 독특한 맛이 났다. 바삭바삭하니 한두 개는 맛있게 잘 먹었는데 역시 기름진 김밥은 내 입엔 별로다. 아이도 음료수와 함께 맛있게 잘 먹긴 했지만 두 번 사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그저 그랬나보다.
아이는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실제 풍경보다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사실 실제 풍경이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아름답다. 다만 간혹 내 눈에 비친 세상이 실제보다 아름답게 느껴져서 사진에 그렇게 찍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가끔 나는 실제 세상보다 약간 다른 느낌으로 세상을 본다. 그 느낌들이 묻어나는 사진들을 보면 나는 몽상가이다.
아이가 6살 때 제주에 처음 갔을 때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생각하며 한 장 찍자고 겨우 졸라서 함께 한 장 찍었다. 무슨 심사인지 이제 사진도 잘 안 찍으려고 한다. 6살. 그 다음 13살. 같은 장소에 7년 만에 간 셈이다. 어떤 멋진 여행지이거나 다시 가고싶다는 생각을 해도 쉽게 다시 찾기가 어렵다. 이 사진을 놓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어디든 찾아간 그 순간 다시는 같은 순간이 돌아올 수 없으니 최대한 즐겨야 한다. 사진을 펴놓고 기억을 되감기할 수는 있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삶을 살아볼 수는 없다. 그저 딱 한 순간, 한 순간 그걸로 끝이다.
한 번 뿐인 그 순간, 찰나를 어떻게 살아내는지,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냈는지 그 모든 것이 모여서 내 인생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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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달은 이 사진 속에 보이는 달보단 훨씬 크고 선명했다.
바닷가 파란 하늘 위에 뜬 달을 줌으로 당겨 찍으면서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경이로운 감정들을
그저 그대로 다시 기억해볼 수 있기를 바랬을 뿐이다.
모든 감정과 느낌들은 순간순간 변하기에 믿을 바가 못되지만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잊고 흩어버리기만 하기엔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해머너가는 시간에도 너무 뜨겁게 느껴지던 볕만 아니라면
느긋하게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 바닷가에 앉아서
흥얼흥얼 어릴 때 부르던 동요라도 불러보고 싶었다.
아이는 얼른 시원한 숙소로 돌아가자고 보채고 나는 아쉬움에 짧은 순간
눈에 들어온 풍경들을 내 눈과 기억을 대신하기 위해 카메라에 담았다.
많이 걸어야 했던 하루 일정에 지쳐 걷기 싫어하는 모델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
겨우 구슬러서 찍은 사진. 더 걷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사진이라도
몇 장 더 찍고 싶었던 내 마음과 이제 막 넘어가는 사그러드는 햇빛이
아쉬움으로 남았던 시간. 그냥 그 느낌들을 이 사진을 펴놓고 기억해본다.
애월이나 이쪽 바다를 끼고 있는 올레길을 걷고 싶어졌다.
가을에 아이와 함께 걸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갈수록 걷는 게 싫은 모양이다.
처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 봄에 한 번 제주에 갔던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여름방학에만 다녀와서 다른 계절의 제주를 볼 기회가 없었다.
혹시나 모를 가을을 기다려본다. 가을이 오면 또 저 길을 걸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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