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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길 위에서<2012>

달빛 아래 음악이 흐르던 밤

by 자 작 나 무 2012. 9. 2.

9월 1일
 
함양 상림 다볕당에서 인산가곡제가 열렸다.
몇 해 전부터 해마다 9월 첫 주 토요일에 열리는데 지난해는 깜박하고 못 가고,
올해 가곡제는 어제 시간 맞춰 다녀왔다. 가곡제가 열리는 것이 7회째라는데 
내가 이 가곡제를 보러 가는 것이 이번이 3번째? 4번째? 
 
 

 
상림에 일찍 도착하여 한 시간 가량 산책을 했다.
가곡제가 시작될 시간 즈음 숲이 어두워졌다.
 
 
 
 

 
조용한 실내에서 해도 좋겠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때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숲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보고 듣는 음악제는 특별한 선물 같았다.
 
  
 

반주를 맡은 김해신포니에타의 첫 연주 '농촌의 아침'이 연주되었다.
지휘 - 이효상
성악가들이 모두 한 곡씩 부른 다음 아리랑도 연주하였다. 
 
 

테너 이정원
선구자 (윤해영 시/ 조두남 곡)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잊지 못하는 까닭 (홍금자 시/ 정애련 곡)
 
 

바리톤 우주호
오라 (현제명 시/ 현제명 곡)
 
 

 
소프라노 김수연
신 아리랑 (우리 민요 / 김동진 곡)
 
 

테너 신동호
그네 (김말봉 시/ 금수현 곡)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비목 (한명희 시/ 장일남 곡)
님이 오시는지 (박문호 시/ 김규환 곡)
 
좋아하는 곡이라 귀담아듣다 보니 '님이 오시는지'를 부를 때 가사가 틀린 부분이 있었다.
준비한 곡이 몇 곡 되지도 않는데 가사에 신경 써서 불러야 마땅할 가곡에 가사가 틀리니
내 귀에는 어쩐지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야외무대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가곡은 평소에 쉽게 느끼기 힘든 만족감과 희열, 행복감에 젖어들게 했다.
그 시간들을 가만히 자주 되뇌게 될 것 같다.
 
 

 
바리톤 우주호
명태 (양명문 시/ 변 훈 곡)
산촌 (이광석 시/ 조두남 곡)
 
개인적으로 테너보다는 바리톤의 낮은 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어쩐지 더 끌리는지라 명태를 부를 때 너무 신이 났다.
 
  
 

 
테너 이정원
석굴암 (최재호 시/ 이수인 곡)
뱃노래 (석 호 시/ 조두남 곡) 
 
 
 

소프라노 김수연
동심초 (설 도 시/ 김성태 곡)
내 마음 (김동명 시/ 김동진 곡)
 
동심초는 정말 수없이 들어도 부르는 이에 따라, 혹은 들을 때의 심정에 따라
매번 다르게 들린다. 그러면서도 뭔지 모르게 가슴을 후비는 듯한 비수를 지닌 곡이다.
이 곡을 듣는 동안 잠시 어릴 때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즈음에 휴일에 다른 가족들은 다 밖으로 놀러 나가도
나는 엄마 곁에서 테이프를 뒤집어가며 가곡을 듣고 했었다.
어릴 때는 내 어머니께서 반복해서 듣고 싶어 하시던 곡 동심초 가사가
그리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삼십 대 이후부터는 가사나 곡조가 유난히 마음을
느슨하게 하고 애달픈 느낌들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나이가 들면 대개 많은 것에 무감각해지고 심드렁해지는데
더 예민하고 섬세해지는 부분도 있으니 다행인가?
 
 
 

양송미, 이정원
춘심아 (정애련 시/ 정애련 곡)
 
작곡가라는 분이 장구를 쳤다. 역시 귀에 익은 곡에나 호응하게 되는 얄팍한 내 귀..... 
 
 
 

인산 가곡상 시상식이 있었다. 올해 수상자는 테너 신동호 님.
 
해마다 상림숲에서 가곡제를 주최해주시는 분들께는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주차비도 입장료도 음악회 티켓값도 필요 없이 몸만 가면 된다.
이런 호사를 공짜로 누릴 수 있다니 정말 고맙다.
  신라시대에 이 숲을 만들자고 하신 최치원 선생님도 고맙고,
당대에 나무를 갖다 심으신 분들, 이후에 잘 보존하고 가꾸고 계신 분들 모두에게
나는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물론 혼자 하늘에 뜬 달보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매번 그 숲에 갈 때마다 항상 그런 고마운 마음으로 길을 걷곤 한다.
 
 
 

상을 받으신 다음 두 곡을 더 부르셨다.
어쩜 저렇게 자그마한 체구에서 저런 힘 있는 목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너무 대중음악에만 심취하여 클래식이나 가곡과는 멀어지는 세태에 대해
지적하시고는 아이들과 더불어 좋은 음악 골라서 많이 들었으면 하는 당부를 하셨다.
 
가곡제를 지겨워하지 않고 기꺼이 함께 와서 듣는 내 딸의 음악적 취향 덕분에
나도 더불어 불편하지 않게 그 자리를 즐길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골라서 들려주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박연폭포 (한국민요 / 김희조 편곡)
희망의 나라로 (현제명 시/ 현제명 곡)
 
 
 

마지막으로 전 출연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서 '축배의 노래'를 불렀다.
     
 

축배의 노래를 듣다 보니 오페라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아직 오페라 공연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노래를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공연장에서 내 딸은 창피하다며 얼굴을 가렸고, 함께 온 아이 친구는 신나서 포즈를 취해준다.


오후에 내 딸은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했다. 시간 못 맞춰 갈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아이 친구도 데리고 가서 음악회 보고 밤참으로 맛있는 것도 함께 먹었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근에 함께 나눈 즐거운 시간 중에
손에 꼽힐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저 아이들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공연 중에 하늘에 뜬 보름달이 오랜만에 많이 행복해하는 내 얼굴을 마주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음악이 흐르는 밤..... 참 아름답고 감미로운 시간이었다.
듣고도 다시 듣고 싶었던 곡, 녹음된 곡이라도 다시 찾아서 들어봐야겠다.


곧 상림엔 석산이 필 것이니 때를 놓치지 않고 가서 꼭 봐야겠다.
연꽃 피었을 때 못 가봐서 아쉽다. 내년에는 여러 가지 꽃 필 시기와 장소들을 미리
메모했다가 놓쳐서 아쉽다는 말을 적게 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