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여행 7일째 되고 보니 돌아다니는 것도 지친다. 전날 논짓물에서 수영 좀 하려니 태풍 온다고 대피하래서 금세 물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서 애월 해안도로에 있는 마지막 숙소로 향했다. 해안도로 앞 바닷가여서 밤새 바람 부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가 대단했지만 피곤하게 돌아다녀서인지 얼마나 바람이 부는지 듣지도 못하고 곤하게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비가 살짝 그치는 걸 보고 한림공원에 갔다. 거의 제주에 갈 때마다 빠짐없이 가는 곳이다. 식물도 더 자라고 거기 살던 동물들도 뭔가 변화가 있을 터라 갔던 곳이라고 다시 또 가도 재밌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야자수 길은 1971년에 모래밭에 씨앗을 심어서 가꾼 야자수들이 자란 것이라 한다. 내 나이랑 비슷한 나무다. 앞으로 제주에 갈 때마다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러 가야겠다.
들어가다가 배고파서 돌아 나와서 매표소 옆에 있는 야자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고 나니 아이가 카메라를 보고 생긋 웃는다.
산야초원으로 향하는 이 돌하르방 길은 2년 전 제주에 갔을 땐 없었는데 그 사이 새롭게 만든 길인가 보다. 산야초원도 그땐 없었는데 새로 생겼다.
돌 하르방은 표정과 손의 위치가 모두 다른 작품이었다.
배가 살짝 볼록하고 웃는 모습이 복스러운 이 돌하르방이 제일 맘에 들었다.
깎은 돌 사이에 나무판을 물려놓은 의자
나무판에 예쁜 꽃그림을 그려놓은 안내판
이런 작은 것조차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이것이 삶에 순응하는 자연의 자세일까. 어딘가에 기대고 감기 좋아하는 등나무의 성질을 적절히 이용한 누군가의 계략에 말려든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별별 생각을 다했다. 그다지 세상살이에 유연하지 못한 내가 뭔가 배울 것이 있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말만 잘하는 이들의 번듯한 말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 오히려 더 크게 와닿는다.
블랙베리가 아직 덜 익어서 붉다.
태산목
산야초원을 한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이 돌하르방이 제일 멋있다며 사진을 찍어달란다.
다음은 협재굴, 쌍용굴, 황금굴 천연기념물 제236호
전날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조금씩 내리기도 하고 하늘이 흐려서 많이 덥지도 않았고, 굴 안은 특히나 시원해서 그날 한림공원 나들이는 정말 느긋하게 걷기 좋았다.
분재원 / 하얀 석류꽃은 처음 봐서 신기해서 찍었다.
재암 민속마을
사진 좀 찍고 나니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간다. 여유분으로 충천해놓은 것을 숙소에 두고 가져오지 않아서 사진을 거의 찍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파리 조류원에서는 공작 날개 펴는 것 한 번 보겠다고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멋진 긴 날개를 가진 공작은 거드름을 피우며 고개만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여기 새들은 큰 울타리 안에 갇혀있긴 하지만 날지 못하기에 풀어놔서 여기저기 마구 쫓아다닌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관찰할 수도 있다.
아열대식물원에는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파충류들도 가져다 놔서 아이들이 무척 신기하고 재밌어했다. 나는 차마 눈뜨고 자세히 못 보고 지나가는 곳.자세히 봤다간 확장된 버전으로 유치하게 꿈에도 나온다.
다른 곳은 카메라가 깜박거려서 찍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점심때 들어가서 오후 내내 놀다가 나왔다. 다리가 아파서 더 못 걷겠다 싶을 만큼 시간을 보냈다. 한두 시간 코스대로 눈도장만 찍고 휘둘러보면 보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기 힘들다.
이번 여행의 여정이 길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시간이 넉넉하니 하루에 여기저기 쫓아다니려고 애쓰지 않고 찬찬히 둘러보고 올 수 있었던 점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긴 제주 여행을 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잘 기록해뒀다가 꺼내보며 추억하는 즐거움을 두고두고 누려야겠다.
'국내 여행 > 제주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애월 바닷가 (0) | 2012.10.25 |
---|---|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에서..... (0) | 2012.10.25 |
태풍오던 날 논짓물 (0) | 2012.09.05 |
다빈치 박물관 (0) | 2012.08.31 |
여미지 식물원 (0) | 2012.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