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아슬아슬하게 막차에 올랐다. 막차가 출발하기 40여 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통영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버스 편이 밀려서 통영 가는 버스에 타려고 줄 선 승객이 70명 남짓 되었다. 두 대를 보내고 막차를 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곁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에게 금연 구역이니 다른 곳에 피라는 따끔한 한마디를 한 것까진 괜찮았는데 버스 승강장이 2003년부터 금연구역이라는 안내판과 금연구역이라는 붉은 글씨가 적힌 휴지통 아래 수북한 담배꽁초들을 본 순간 내 뜨거운 피가 또 끓어오르는 게 아닌가.
40분 동안 줄 서 있는데 그 많은 사람이 피곤한 저녁 막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내가 쫓아 보낸 40대 아저씨보다 더 뻔뻔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줄을 선 채 승강장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상태라 담뱃불은 그 남자와 한참 떨어진 그 줄의 맨 앞에 서 있던 내 눈에도 띄었다. 그 남자 앞에 선 여자가 코를 막고 눈치를 주는데도 아랑곳없이 그 남자는 끝까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70명 남짓 되는 그 많은 사람 중에 아무도 그에게 눈치를 주거나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답답해서 참다 참다못한 나는 씩씩거리며 그 남자 앞에 가서 소리를 쳤다.
"이보세요! 여기 금연구역이라고 써 붙여 놓은 거 안 보여요? 사람들 많은 승강장에서 무식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그 정도 기본도 안 되어 있어요? 앞에서 코 막고 있는 아가씨 안 보여요. 댁이 여기서 피는 담배 연기 저 멀리 있는 내 딸한테까지 와요! 열 받아서 사진 찍어서 신고하려다가 말로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고 뜬금없이 다가온 낯선 여자의 호통에 그만 쫄아버린 그 남자는 어쩔 줄을 모르는데 돌아서 오면서 내 다리는 왜 그렇게 후들거리며 떨리는지.....
만일 그 남자 성질 더럽고 팍팍한 인간이었다면 같이 통영행 버스를 타고 가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통영에서 부딪히면 내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짧은 불안감이 스치는 순간, 긴장됐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오늘 먹은 국수가 소화될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 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내가 굳이 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런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실례인 것과 동시에 불법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될 것 같은 남자로 보였다.
버스에 올라타고선 눈을 내리깔고 아무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기만을 바랬다. 나는 두렵다. 또 어딘가에서 그런 주제넘은 조언을 마구 하게 될지도 모를 과한 내 의협심 비슷한 것이 좀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한라산에서 쉴 때마다 하필 내 옆에서 담배 피우던 그 젊은 남자 둘에게 못 하고 온 말을 부산에서 한 것 같았다. 국립공원 내에서 금연이고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한다는 안내문만 보고 갔어도 사진을 찍어 신고하거나 더 크게 한마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땐 멀리 제주까지 놀러 와서 산에서 담배 피우는 그 몰상식함에 화가 나서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슬쩍 흘리긴 했어도 이번처럼 사람들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질타하듯 하진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고 나니 또 후회된다.
화장실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서 버젓이 노상 방뇨하는 남자들을 볼 때 그들의 떳떳함에 나는 항상 경악하고 그 곁을 지나는 순간 도대체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되는 그 상황에 화가 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감한 것에 나만 너무 유난을 떠는 게 아닌가 해서 밖에 나가면 눈도 귀도 입도 꼭 틀어막고 싶은데 오늘은 내 입이 결국 참지를 못했다.
잘못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혼란스럽고 내가 괜한 주접을 떤 것 같아 집으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맥주를 사 들고 왔다. 괜히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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