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터널 내부
상수도와 전화나 전기케이블 보호를 위해 둑을 쌓은 자리에 오래전엔 시멘트 둑이 없었다. 여름에 더울 땐 돗자리 하나 들고 내려와 둑이 있는 자리쯤에 자리 잡고 앉거나 누워서 책 읽는 것을 즐겼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은 거의 한 여름 무더위를 그렇게 넘겼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내가 어릴때 살던 동네. 지금은 저 바다 건너, 다리 너머에 산다. 살던 집은 해안도로 확장공사로 13년 전쯤 허물어졌다. 그때는 대문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바닷가 도로변 집이어서 매일 눈만 뜨면 호수 같은 바다를 보고 자랐다.
충무 운하교와 저 너머 초록불 켜진 통영 대교. 운하교 아래를 파서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왜란 당시 지금 오색불빛이 영롱한 바다를 지나 왜군들의 시신들이 떠내려와 저 바다는 시신으로 그득했다 한다. 그래서 저 멀리 통영대교가 보이는 곳은 옛 이름이 '송장 끝'이다.
일본군은 자기 조상들의 시신이 밀려왔던 자리 아래를 파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네 조상들의 주검이 있던 자리 아래를 지나다니게 만들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중학생일때 충무공의 제사를 지내던 작은 사당에 만들어졌던 도서관 낡은 서가에서 찾아 읽은 기억이 있다.
침략자인 그들의 혼을 오히려 밟고 다녀야 옳다는 민족주의자들의 뜻으로 그 위를 밟고 다니기 위해 운하를 파서 다리를 만들었다는 숨은 이야기도 있다. 전혀 사실 무근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때 그 이야기를 읽고 일부러 다리 위로만 다녔던 적도 있다.
해저터널을 지나 다리 건너로 갔다가 다시 다리를 건넜다.
낡고 오래된 교각은 버스나 승용차들이 지날때마다 엄청나게 흔들렸고 지영이는 잔뜩 겁먹어서 표정이 이상하다. 충무 운하교 위에서 바라본 통영대교와 밤바다.
다리를 무사히 건너 다리 아래로 처음 가보는 길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교각 아래에 마침 사람들이 없길래 테이블에 카메라 올려놓고 또 주책맞은 셀카 놀이를 했다.
산다는 게 녹록지 않다. 스트레스 받을 일들이 줄줄이 생기니 마음이 항상 물결치지 않는 호수 같을 수는 없지만 바람에 나부끼고 가끔 화나고 눈물 나는 일 있어도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별 수가 없다. 오후에 내내 나빴던 기분을 다스리기 위해 아이랑 저녁 먹고 늦게까지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몇 컷 셀카를 찍었는데 지영이도 사진 찍는 맛 들여서 오늘 엄청 많이 찍혔다.
풍경 사진을 찍는데 앞에 껴들어서 계속 저 포즈로 사진을 찍어주기를 바래서 풍경 사진이 지영이 사진으로 둔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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