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쯤 갓난아기를 낳은 한민이 엄마가 바닷가로 놀러 나왔다고 전화를 해서 오후 내내 쑥쑥한 꼴로 컴 앞에 붙어 있다가 씻고 휘적휘적 나갔더니 일전에 새사람이라고 찍어 올린 아기가 엄마 등에 붙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한민이네는 3년 전쯤 동네 길 어귀에서 만나 알게 되었다. 부산에서 이사온 새댁이었는데 지영이 또래만한 남자아이 손을 잡고 길을 가다 내게 말을 걸어와서 오며 가며 만나면 인사를 하고 지냈다.
나와 성격이 잘 맞거나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 외엔 인사를 트고 지내도 거리를 두고 그 이상은 가까와지지 않으려는 습성을 가진 내게 그녀는 나름대로 가까워지려고 애를 썼지만 좀 떨어진 동네로 이사하면서 자연히 오갈 일이 없어져버렸다. 그나마 그녀에 대해 언젠가 밥 한 끼는 사야 할 것이라고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은 재작년 해일 났을 때 마트에서 산 김밥이며 과일들을 가끔 우리 집 문 앞에 살며시 걸어놓고 가곤 했다.
그땐 정말 눈물나게 어려운 때였다. 끼닛거리도 없이 하루하루 막막한 심정으로 살 때 태풍으로 수재까지 당해서 바닷물에 휩쓸린 물건들을 싸다 버리고 씻고 말리고 넋 나간 사람처럼 콕 틀어박혀 지낼 때였다. 누군가 인기척이 있어도 내다보기도 싫을 때였다.
어쨌거나 그때 그녀가 사다준 김밥은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한민이 엄마의 친절은 뭔가를 되돌려주고 싶은 의무감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 큰 것은 되돌려주기 어렵지만 작지만 잊지 않고 있던 고마운 마음을 언젠가는 표현해야겠다 싶어 아기 낳았을 때 내의 한 벌 사들고 간 것으로 됐다 싶었는데 좀 더 떨어진 동네로 조만간에 이사를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다음으로 미루면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어려울 것 같았다.
마침 함께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던 나현이네랑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딸 셋 다 데리고 오면 내가 부담스러울거라고 둘은 떼놓고 온다는 말에 내가 민망해서 아이들 다 불러앉혀서 함께 밥을 먹었다. 무얼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그렇게 둘러앉아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도 언제 이 동네를 뜨게 될지 모르고 그렇게 약속 없이 불쑥 만나서 저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또 다음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 그렇게 마주쳤을 때가 함께 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어젠 내 지갑에 돈 한푼 없었다. 그래서 좀 막막한 상태였지만 마음이 나서는 대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래서 나는 돈을 모으거나 쥐고 있지 못할 것이고 평생 가난을 면하지 못할 거라는 말도 듣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고향이지만 이곳에 다시 돌아와 살게 된 후 어울려서 밥을 같이 먹어본 이웃은 그 두 사람이 전부다. 옛친구를 제외하곤 사람을 사귀고 어울려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게 쉬운 인연은 아닌 것이다. 딸 셋을 키우는 나현이네는 영원한 이웃으로 남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앞으로도 많이 만나고 좋은 인연으로 오래오래 오가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나현이네 막내딸 가현이
사이다를 소주 잔에 부어 마시고 아빠가 술 드시고 하시는 모습대로 보고 배워서
인상 쓰는 모습.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 아줌마를 위한 보너스였다.
이웃집 큰딸 나현이와 스마일 소녀 정현. 동생들한테 질세라 표정을 카피한 한 컷
나도 딸을 키우다보니 남의 딸도 다 사랑스럽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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