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던 얼굴과 드디어 목소리 상견례를 했다. 11년 전 열다섯 살 까까머리들이 어느새 스물여섯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냥 친구 하자고 그랬더니 몸 둘 바를 모르는데 재밌어 죽는 줄 알았다. 통화하는 내내 옛날이야기에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정말 너무 궁금하던 두 녀석과 통화를 하고 나니 밤이 깊어졌다. 빠르면 이번 주말, 좀 미뤄지면 추석 전후로 그 녀석들과 뜨거운 상봉이 있을 예정이다. 아........ 정말 너무 기대되는 만남이다.
11년 전의 내 모습은 어땠을까. 그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의 11년 전 모습을 조명해주기로 했다. 만나고 싶어서 서울에서 조만간에 날 받아 내려온다는 녀석은 얼마나 이쁜지 그때도 참 곱게 생겼었는데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선생님, 제가 그때 그렇게 어렸었어요? 전 상당히 성숙했었고 어른스러웠던 거 같은데요. 저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단 말이에요?"
"하하하~ 나도 나이 헛먹어서 철 안 들고 정신연령은 그대로니깐 우리 그냥 친구 하면 된다. 너희 뭔가 기대하고 있으면 만나는 즉시 실망하니깐 그러지 말아."
너무 들뜨고 즐거운 대화였다. 만날 날이 기대된다. 보따리 그때 풀자며 아쉬운 전화를 끊던 그 목소리..... 정말 나만큼 그들도 내가 반가웠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열여덟 소녀처럼 들뜨고 설렌다. 목에 힘주고 점잖게 말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역력했던... 나이 든 소년들과 철없고 순진했던 처녀 선생님의 추억이 함께 만나는 것이다. 며칠 사이 좀 더 젊고 쌈박해질 방법이 없는지 연구해봐야겠다.
녀석들 나 늙었다고 구박하고 친구 안 하겠다 하면 패줘야지. 목소리만 안 늙었는데 녀석들이 목소리 안 변했다는 말에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오늘은 너무 좋아서 잠 안 올 것 같다.
상수 녀석은 정말 바쁜가 봐.
나 혼자 너희 반가워서 팔딱거린 거 같다. 반가운 척하는 건지 진짜 반가운 건지.....
에잉~ 어쨌거나 건강해 보이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보기 좋고.....
네 나이 즈음부터 10년 쯤 더 살다 보니 추억이란 걸 먹고살게 되는 것 같다.
아직 미래를 바라봐야 할 때인데 사는 게 힘들고 버거워지면 좋았던 옛 시절이 그리워지고
그때 알았던 사람도 그만큼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만났던 너희를 오래 기억하고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하긴 여러 학교 돌아다녀도 너희처럼 집에 찾아와서 놀다간 녀석들은 없었으니
나한텐 각별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고.....
참 짧았던 그 가을을 그렇게 한 편의 영화처럼, 혹은 소설처럼 기억하고 있다.
너희들에게 나에 대한 기억은 어땠을까.....
11년 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그때 나는 너희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는데 상수는 뭐가 그리 바쁜지 빼잖아.
이제 연락 닿았으니 천천히 생각하고 다음에 천천히 봐도 좋을 텐데
난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한지 너무 보고 싶더라. 너도 그렇게 멀리 가 있지 않았더라면
당장 오늘이라도 점심 같이 먹자고 불러냈을 텐데.....
참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소년이었던 너 그사이 지난 세월만큼 너도 많이 변했겠지.
그때의 모습만은 클로즈업된 채로 내 기억 속에 곱게 남아 있다.
한창 네 나이 땐 나름대로 고민 많고 힘든 일도 많을 텐데
예전처럼 내가 선생님의 입장으로 너희를 만나긴 힘들 거야.
그냥 나이 먹고 철 덜 든 친구 만난다 생각하고 다음에 시간 내서 꼭 보자.
한번 만나고 나면 추억에 묻힌 기억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간 허물어질지 아님 더 기분이 좋아질지
역시 만나봐야 알겠지만...... 난 너희 만날 생각하니 어제 잠이 안 오더라.
빨리 보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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