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03~2009>/<2005>

라면 끓여주는 여자

by 자 작 나 무 2005. 9. 2.

 

어제 오후에 오랜만에 친구 집에 갔었다. 쉬는 날 없이 계속 일을 하던 친구라 한번 만나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는데 최근에 좀 더 시간이 편한 곳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나기 시작하면서 나도 부쩍 외로움을 심하게 타기 시작했다. 자꾸만 따뜻한 이불속, 따뜻한 음식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진다.

 

어젠 유난히 더워 가자마자 아이스티 한 잔 마시고 한참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하는 동안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던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눈이 갔다. 갑자기 그 냄비에 끓인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친구가 손수 해주는 밥을 먹고 싶었다. 그 더운 날 일 마치고 와서 이것저것 신경 쓰고 음식 만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주 간단한 메뉴로 주문했다. 난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할 때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 후로는 그에 대한 갈증을 내가 좋아하는 친구나 이웃에게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은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해줄 만한 사람이 주변에 흔하지 않고 매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젠 배도 고프지 않았는데 괜히 그 친구가 끓여주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열전도율이 높다는 양은냄비에 팔팔 끓인 라면을 받아 들고 뚜껑에 면을 건져 먹으면 더 맛있다고 손에 뚜껑을 잡혀주는 친구의 손이 정말 고마웠다.

 

감동하거나 마음이 움직이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나는 울먹울먹해지고 코끝이 찡해진다. 너무 허술하게 내려앉은 티를 내기 싫어 맛있게 먹기만 하고 그사이 살이 빠진 친구를 몰래 한 컷 찍어왔다. 내게 친절하게 라면을 끓여주는 여자.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여자... 친구. 다음엔 국수 해줘~ 히~~ ^^*

 

 

 

'흐르는 섬 <2003~2009> > <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풍 전야 색의 향연  (0) 2005.09.05
나의 J에게  (0) 2005.09.02
그리움이 익는 계절  (0) 2005.09.02
만남  (0) 2005.09.01
8월의 마지막 만찬  (0) 200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