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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명절 앞두고

by 자 작 나 무 2005. 9. 16.

머리를 감고 축축한 채 살포시 잠이 들었다 깼다. 온종일 많은 생각들로 피곤했던 모양이다. 깨어난 순간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이 시각에 잠들었어도 괜찮은 것이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휴대폰을 열고 시간과 날짜를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컹한 내게 일침을 가하는 조언으로 마음을 다지게 해 준 해원이 엄마와 주고받은 말들을 하나씩 되새김질해보았다. 너무 감정적으로 여리고 물컹해서 늘 걱정하던 것들을 족집개처럼 꼭꼭 집어서 말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잠에서 덜 깬 머리로 생각해낸 것이 마감 시간 되기 전에 병원에 가는 일이다. 그동안 갈수록 심해지는 알러지때문에 아침저녁으로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병원 갈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항생제 같은 약을 자꾸 쓰다 보면 몸에 면역체계가 오히려 더 약해질 것이 염려되어 뜸뜨는 것 외에 특별한 처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젯밤엔 견디기 힘들 만큼 계속되는 콧물과 재채기를 연거푸하고나니 오늘은 며칠 병원도 문 닫을 것이란 생각에 긴장이 되어 생각이 솔깃해졌다. 급할 때 처방받은 약이라도 먹고 자면 좀 나을까 해서. 이대로 더 상태가 나빠지면 다음 주에 명절 지나고 만나기로 한 제자들 앞에서 계속 재채기나 하게 되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해서 뭔가 그 사이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단박 나아지진 않아도 더 나빠지지만은 않아야겠다.

 

어딘가 떠나고 싶은데 명절이라 길위엔 오가는 이들이 많아서 번잡할 텐데 나까지 거기에 일조하고 싶지 않아서 여행은 하지 않을 참이다. 우울하게 늘어져 있을 이유도 없으니 화장을 하고 옷도 갈아입고 병원 나갔다 오는 길에 시내에서 아이를 받아서 저녁도 사 먹고 들어올까 싶다. 마땅히 먹을만한 메뉴도 떠오르지 않지만 시장 본다는 핑계로 저녁도 사 먹고 들어와야겠다.

 

대형 마트에만 가면 공기가 나빠서인지 금세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환자처럼 변한다. 우리 동네 마트엔 없는 물건들이 이마트나 롯데 마트 같은 대형 마트에는 있으니 시간 죽이고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 오려면 그쯤은 갔다 와야 할 테고 이렇게 허퉁한 심정으로 다른 곳에 가면 너무 쓸쓸해질 것 같아 다른 곳에 오늘은 가고 싶지가 않다.

 

나를 반겨줄 곳이 없다면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다. 들어오는 길에 비디오 가게 들러서 비디오도 빌려오고 맛있는 간식거리도 많이 사 와야겠다. 머리 기름 냄새 배도록 부침개 부칠 일도 없고 명절 되면 나처럼 편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것도 복이라고 생각하고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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