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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03~2009>/<2005>

9월 14일

by 자 작 나 무 2005. 9. 14.

조카는 자폐증이다. 옹알이 안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외에도 신체적 결함이 있어 참 아프게 키운 아이였다. 여동생보단 어머니와 내 등에 더 많이 업혀서 자란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내 딸 사지 성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에 대해 더더욱 감사하게 된다.

 

그 아이 데리고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는데..... 조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여동생의 책임인 양 시댁에서 못살게 굴어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아 개가해서 살고 있지만 나는 빈손으로 아이만 데리고 나와서 사는 게 매양 거기서 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딸과 나는 서로가 없으면 외톨이다. 이혼한 것이 무슨 대역죄나 되는지 우리 가족들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래서 딸에게도 일가친척은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추석이 다가오니 또 마음이 짠해진다. 나를 찾을 사람도 없겠지만 이즈음엔 정말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으로 가버리고 싶어진다. 돈 많으면 외국 여행이라도 가서 며칠 낯선 거리를 돌아다니다 오고 싶을 정도로 울컥했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덜하다. 그간 다친 마음들이 주말여행으로 많이 추슬러졌나 보다.

 

딸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진다. 내가 오래 살아서 곁에 건강하게 함께 있어 줘야 할 텐데..... 친구도 한때고, 가족이었던 사람들도 떨어져 있으면 때로는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걸 몇 년간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지영이가 자라서 내가 남긴 사진과 글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읽어보며 생각하면서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 연례행사처럼 겪는 추석맞이 우울증이 며칠 전부터 조짐을 보이더니 더러 가슴을 짓누른다. 아무리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어도 이혼 경력은 실패한 인생을 상징하는 수인이 되어버린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품어주지 못하는 내 가족이었던 사람들만 보아도 그렇다. 한때는 내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주는 상처는 스쳐 가는 사람들이 주는 상처보다 더 아프고 오래간다.

 

지척에 있는 어머니 집에 다 모이면서 내겐 전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젠 그러려니 하지만 참 세상 살아가기 서럽다. TV와 컴퓨터 앞을 오가는 일 외에 다른 계획 없이 심심한 연휴를 어찌 보낼지 궁리를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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