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서 드디어 보물 상자를 들고 왔다. 추억이 담긴 그 상자엔 오래된 일기장, 메모가 들어 있던 노트, 수첩, 편지 등이 잔뜩 들어 있다. 딸이 어려서 찢을까 봐 차마 들고 오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들고 왔다. 그 사이 잊은 듯 살았던 내 과거의 아름다웠던 인연들과 해후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편지들 하나하나 꺼내서 다시 읽어볼 참이다. 한꺼번에 다 할 수가 없어 우선 반가운 마음에 몇 가지 뒤적여보았다. 아.... 이 만큼 화끈한 이벤트가 또 있을까. 너무 재밌을 것 같은 기대감에, 돌아오면 치우려고 어질러둔 물건들 하나 손대기 싫다. 오로지 아이를 재우고 손때 묻은 저 종이들 한 장, 한 장에 담긴 역사를 밤새 되새겨 볼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내가 한때 공부했던 책들 중 일부. 저런 걸 머리 아파서 어찌 읽었는지... 전공과 관련된 서적들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긴 하지만, 저런 책을 읽었어도 흔히들 말하는 색깔론자가 되지 않았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지닌 냉철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천성이 감성 우위라 어쩔 수 없나 보다.
내 보물 상자에 담긴 편지들. 일기를 쓰는 것 외에도 참 많은 말들을 글로 옮겼다. 친구, 스승, 제자, 선배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잊었던 기억들을 되돌려 놓는데 한몫 톡톡히 할 것이다.
계약했다가 망한 어떤 출판사..... 원고만 건네주고 돈 한 푼도 못 받았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도 사기를 당한건 아니었는지.....
10년이 훨씬 넘은 일기장... 그때나 지금이나 청승맞기는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항상 사람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희망을 거는 것은 사람뿐인가 보다. 만년필로 갈겨쓴 일기지만 저 종이가 남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반갑고 기분 좋다. 지난 흔적들을 이렇게도 매만져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나의 기록하는 습관에 오늘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