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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스위스 <2013>

그림젤 패스를 넘어

by 자 작 나 무 2014. 8. 14.

그림젤 패스(Grimsel Pass)는 베르너 오버란트의 하슬리(Hasli)계곡과 발레주의 곰스(Goms)를 연결하고 있다. 이 고갯길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화강암으로 이정표를 해놓은 인구수가 매우 희박한 산악지역과 저수지 및 발전소를 통과하여 지나게 된다.

(스위스정부 관광청)
 

 

 

라우터브루넨 쪽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길에 그림젤 패스를 지나기로 했다. 빙하 특급을 타고 체르마트로 입성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파리에서 빌린 차를 타고 다니고 있으니 아무리 험한 고개라도 넘어서 체르마트로 가야 했다.

 

이젤발트에서 나올 때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림젤 패스를 오르는 동안은 더 날씨가 험해졌다. 비와 안개로 정상까지 올라오는 동안 길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이 길을 넘으면 이탈리아로 갈 수 있다는 말에 갑자기 이탈리아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급경사에 급커브 길을 엉금엉금 가다 보니 무사히 넘어가면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8월 초였는데 이곳에 도착했을 때 기온이 1도였다. 비바람이 심해서 밖에 나와서 우산을 펼 수도 없었다. 춥고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꼭 이정표 사진은 남겨야겠기에 잠시 차에서 내렸다.

 

 

계곡 굽어진 길, 경사진 길로 일관된 험한 고개다. 호수와 댐을 지나가면서도 악천후로 전혀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장 높은 지대를 넘어선 순간 거짓말처럼 시야가 좀 환해졌다. 저 굽이진 길 너머는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안개와 구름 속에 갇혀 있다가 탈출한 순간이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얼마나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 아쉽다.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그림젤(Grimgel)패스와 쌍벽을 이루는 악명 높은 고갯길 푸르카(Furka) 패스다. 다음에 또 이곳에 오게 된다면 두 고갯길 넘는 걸 다 도전해보고 싶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넘는 사람들도 있고, 비가 줄줄 내리는 길을 오픈카를 타고 혼자 넘는 여자 여행객도 있었다.

날이 맑을 때라면 몰라도 그 날씨에 오픈카를 타고 비를 맞으며 급경사를 오르는 모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너무 멋있다!

빙하로 덮인 산이며 저 너머 드러나지 않은 험준한 산줄기를 넘게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길들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짜릿한 기분~

 

 

 

 

 

고갯마루를 넘은 차들이 일제히 이곳에서 쉬었다. 이전에 휴게소가 있긴 했지만, 거기서 쉴 마음이 생기지 않을 만큼 춥고 시야도 어두웠다.

 

 

  

 

 

 

 

 

 


  

고갯길 넘는데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점심때가 한참 넘었는데 중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서 무척 배가 고팠다.

 

고개를 내려오니 가도 가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이런 멋진 풍경들이 계속되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멋진 바이크와 가죽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이 보였다.

 

 

 

망설임 없이 그 근처에 차를 세우고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카메라로 찍지 않은 자리에 외투를 걸어놓고 앉아서 술과 음식을 즐기는 여행객이 많았다. 

스위스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종업원과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대략 손짓이며 눈치까지 동원해서 음식을 주문했다. 우리가 주문한 스테이크가 빨간 불꽃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저런 화로에 구워주는 스테이크 맛은 어떨까

 

 

 

 

색다른 두 덩이의 치즈를 서비스로 받았다. 독특하고 상큼 고소한 맛이다. 

 

맹맹한 식전 빵을 치즈와 곁들여 먹었다.

 

 

우리가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감자와 토마토 구운 것을 곁들여주는데 여태 먹어본 스테이크 중의 최고였다.

 

 

구운 감자 맛이 너무 좋아서 더 달라고 하고 싶은데 영어를 못 알아들으시니 뭐라고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데 눈치껏 감자를 더 갖다 주신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동양인이 자주 찾아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우리가 좀 신기한지 흘끔흘끔 쳐다보기도 한다.

 

이건 녹인 치즈와 함께 먹는 찐감자. 통이 참 인상적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가끔 치즈 녹여서 감자랑 이렇게 먹어봐야지 하고 생각은 했는데 사진을 다시 보기 전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찐 감자와 녹인 치즈. 내일 꼭 해 먹어야겠다.   

이 음식은 스위스 퐁듀와 쌍벽을 이루는 전통 음식 라클렛이다. 녹인 치즈와 찐 감자. 단출하지만 고소하고 맛있었다.

 

 

 

고갯길 넘으려면 바이크 족들에겐 특히나 두툼한 외투가 필요하니 식당 입구에 튼실한 옷걸이가 준비되어 있다. 다른 테이블에서 영화에서나 본 적이 있는 스타일의 바이크 족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저곳을 나서면서 다음에 꼭 찾아오겠다고 다짐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정말 스테이크 너무 맛있다. 좀 가격만 저렴했더라면 더 시켜서 먹었을 텐데 가격은 만만치 않은 식당이었다.

 

 

 

 

 

저 험한 고개를 자전거를 타고 넘는 모험가들, 그림젤과 푸르카를 하루에 오가며 자연을 만끽하는 바이크족들. 우연히 넘게 된 고개에서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광경들을 보고 내가 지어놓은 인생의 틀을 좀 더 가볍게 뒤틀어놓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힘들고 두려운 고개를 넘어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며 따뜻한 식사를 하며 느꼈던 안도감, 그런 느낌과 설렘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