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보다 더 기운이 빠진다. 학교 다녀오면 새 학년 반친구들 이야기며, 선생님들 이야기를 조잘거리던 딸이 오늘은 늦잠 실컷 자고, 제 방에서 피아노를 치다가 플룻을 불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올해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본다고 다음 금요일에 오디션을 본단다. 플룻으로 오디션 볼거라고 악보 놓고 혼자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피아노 반주를 먼저 해서 디지털 피아노로 녹음해놓고 그걸 재생시켜놓고 제 피아노 반주에 맞춰 플룻을 분다. 정말 내 딸은 심심할 틈이 없겠다. 정작 나는 시간나면 하겠다던 일은 다 뒷전으로 미뤄두고 세상과 담을 쌓은 사람처럼 방안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시장보러 나가기도 때론 버거워서 인터넷몰에서 시장을 보기도 한다. 어차피 무거운 물건을 사면 마트에서 배달을 해주지 않는데 인터넷 마트에서 사면 집까지 가져다준다. 세상살기 참 편해졌다. 근데 뭘해도 시큰둥한 이 마음은 무얼 붙들고 일어서야 할지 아직 감감하다.
도서관에서 빌려다놓은 책은 몇장 넘기지도 못하고 그냥 덮어두었고, 새로 공부해보기로 한 미적분 공부는 손도 대지 못했다. 딸이 인문계로 진학해도 미적분을 배워야 한다니 내가 먼저 공부해서 가르쳐주려니 일이 많다. 나는 인문계라 수2는 한번도 배운 적이 없다. 앞으로도 딸이 학습과 관련된 학원엔 가지 않을 계획이니 내가 어떻든 다 받쳐줘야 하니까 싫어도 해야 한다.
가끔 수학이나 영어공부 같이 하면서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놀아서 아직 기초가 부족하다보니 중3이 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딸 공부를 도와주는 일 외에 엑셀도 기본 밖에 못하니 좀더 해보겠다고 책은 사다놨는데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 때문에 역시 책꽂이에 모셔져 있다.
어제 오후에 운동 좀 하고 공부하려고 노트북에 옮겨서 볼 동영상을 준비해놓고 USB를 찾다가 그만 발이 걸려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USB가 하나도 없다. 집안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몇번씩 뒤졌다. 덕분에 서랍 안에 묵혀둔 물건들을 좀 버리고 청소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만의 시간이 USB 찾느라 다 날아간 뒤에야 USB 무더기가 발견되었다. 지퍼백에 죄다 모아서 잘 정리를 해뒀더니 찾지를 못한 것이다. 컴퓨터 근처에 손이 잘 가는 곳에 던져두었을 때는 쉽게 찾았는데 정리를 해서 자리를 새로 옮겨놓고보니 도대체 어디다 모셔뒀는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나는 너무 정돈하고 살면 안되나봐." "그래, 엄마 너무 깨끗하면 부담스러워. 그냥 하던대로 좀 어질러놓은 게 인간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니까 그냥 이렇게 해둬." 오랜만에 정리 좀 해놓고 살겠다니 하지 말라고 딸이 대놓고 말린다. 그래 이걸 누가 보고 흉보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는데 그대로 편하게 살자. 그래도 매일 한 구역씩 정해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 사용하지 않고 오래 묵힌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는 일을 하려고 한다. 지금 우리집엔 필요 이상의 물건들이 너무 많다. 이래가지고 이사를 어떻게 한담.
이 공간에 너무 익숙해져서 과연 어디론가 옮겨가서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적응된 것에서 벗어나는 것,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미리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다. 그래서 누군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일도 지금은 거의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렵다. 생각만으로 부담스럽다.
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니 머리 아프고 복잡한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고,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인연도 싫다. 그래서 그냥 혼자 지내기로 하고 보니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손을 잡고 일어서고 싶을 때 내 몸이, 내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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