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흐르는 섬 <2010~2019>/<2015>

아직 나는 한참 멀었다.

by 자 작 나 무 2015. 6. 17.


*

누군가 이야기 할 대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들이 있긴 하지만. 다들 바쁘다. 나는 아직 뭔가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을 관심있게 볼 마음의 여유도 없고, 방어적이고, 이왕이면 허술하고 약한 나를 누군가 챙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런 마음으로 누구를 만난들 잘 될 리 없다. 


생각만으로도 울렁거린다. 이건 일종의 대인기피증 증상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편안하게 느낄 만한대상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누구든 만나거나 이야기 한다는 자체에 부담감부터 느낀다. 


집배원이 내 등기 우편물을 옆집에 가져다 주려고 애쓰다 돌아간 모양이다. 옆집 모퉁이에 우편물 도착 안내문이 붙어있더라며 딸이 가져다줬다. 담당집배원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전화하기가 꺼려져서 내일 배달 온다는 시간 즈음에나 어쩔 수 없을 때 하려고 미뤄버렸다.



**

배는 고픈데 식욕이 당기지 않아 뭘 해먹을까 궁리하다 김밥 만들려고 사놓은 재료로 다른 음식을 만들었다. 굽고, 볶고, 조리고, 데쳐서 3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밥을 먹었다. 음식을 만들 때 온 신경을 거기에 쏟아서 아무 생각없이 이것 저것 만들다보면 나도 모르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

딸에게 2차방정식 문제를 풀어보라고 서술형 문제 4문항을 출력해서 줬더니 한 문제도 못 풀겠다며 화를 냈다. 차근차근 설명해줬는데 무조건 어렵고 모르겠다며 괜히 화를 내서 기분이 상했다. 해보지도 않고, 열심히 하는 시늉도 하지 않고 안된다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싫다. 내 딸이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그땐 정말 화가 난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시 하면 되는데 못한다는 말부터 던져버린다.


그럼 진짜 못하게 될 경우가 생긴다. 나처럼 나이 먹어서 머리 굳은 아줌마도 수학 문제 얼마든지 푸는데 젊고 머리 좋은 네가 왜 못하겠냐고 해보라고 다독거려 놓고 돌아섰는데 좀 빈정 상한다. 이래서 제자식 가르치긴 어려운가보다. 열받아......씩씩~


나는 고작 잘하는 게 문제 푸는 것 정도 뿐인데 딸은 나보다 잘하는 게 많으니까 수학 좀 못해도 사는데 큰 지장없겠지 라고 생각해버리고 싶지만, 속에서 뭔가 욱 치밀어오른다. 알고보면 정말 어려운 게 아닌데 왜 저렇게 쉽게 모른다 못한다고만 해버리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내가 고민하는 인생 문제도 별 것도 아닌데 고민한다고 말할 것이라 생각하니 오십보 백보인데 화낼 일도 아니다. 근데 수학 문제는 답이 있지만, 인생 문제는 정답이란 게 없다. 내 문제는..... 혼자 살기는 싫고, 사람 사귀는 건 어렵다. 그래서 못한다 힘들다고 말하면서  피하고 방어벽 치고 껍질 속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이건 못 푸는 게 아니라 어쩌면 풀 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흐르는 섬 <2010~2019> >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월 24일  (0) 2015.06.24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0) 2015.06.21
6월 14일  (0) 2015.06.14
6월 11일  (0) 2015.06.11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해지겠지  (0) 201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