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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6월 11일

by 자 작 나 무 201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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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디카 메모리카드에 그대로 둔 것도 많고, 컴퓨터에 옮겨놨어도 블로그에 옮겨놓지 않은 이상 잊고 사진을 들춰볼 기회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가끔 딸이랑 사진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기엔 블로그에 사진을 옮겨놓고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역시나 좋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간 지나간 일들이며 묵혀둔 사진이 정말 많다. 한번 손 놓으니 로그인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음악도 듣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멍하게 보냈다. 지금도 머리가 맑고 생각이 청량하진 않지만 그래도 얼마 전보단 훨씬 나아졌다. 문득 즐겨듣던 곡을 듣고 감정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마음이 풀어지고 몸도 조금씩 컨디션이 좋아지려니 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 다른 날보다 잠을 좀 많이 잤다. 앞으론 잠을 좀 많이 자고 개운한 상태로 생활하도록 노력해야겠다.


 

- 나는 지레 겁먹고 사람 쫓는데 일가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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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친구가 몇 분 있다. 엠파스 블로그에서 시작해서 엠파스가 사라지고 다음으로 옮긴 뒤 각종 다른 포털사이트로 주소를 옮겨가서 뭔지 모르게 뿔뿔이 흩어져서 예전과 같진 못하지만 오랜동안 내 블로그나 친구분들 블로그를 서로 오가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은 알고 댓글을 주고받으며 교류하며 친분을 쌓은 경우엔 10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어린 딸과 단둘이 막막하게 힘든 삶을 이어가며 혼자 넋두리 하듯 내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한것이 블로그의 시작이 되었다. 가끔은 지난 이야기들 읽다보면 언제 그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들도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내 구차한 삶의 그림자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많은 위안과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주신 분들이 있다. 항상 고마운 마음 잊지 않고 있지만,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한 것 같아 마음이 때론 무겁다. 


상대를 전혀 모르는데 누군가 댓글을 달면 나는 거의 답을 하지 않는 편이다. 가끔 대학 다닐 때 알던 사람도 와서 내 블로그를 보고 갔다 하고, PC통신하던 20대에 통신 동호회에서 알던 분이 다녀가기도한다. 그 중에는 아는 척도 하지 말고, 내 블로그를 보지도 말았으면 하는 맘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요즘처럼 스토커를 신고해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었더라면 진작에 신고했을 법한 사람도 있다. 


그는 내가 대학생일이었을 때 알던 사람이다. 내가 살던 하숙집에 숨어들어와 내 방을 뒤지고 옷장 안에 숨겨두었던 몇 년 치 일기를 훔쳐서 읽었던 나쁜 놈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에 그런 얄팍하고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을 쓴다는 사실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때 열심히 쓰던 일기엔 시시콜콜하게 사적인 감정과 생각을 여과없이 썼었다. 그걸 내가 아닌 누군가 읽는다는 사실 자체로 정신적인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뜬금없이 수십 년 만에 다시 나를 찾아 지난 일을 사과하노라고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 한 번 등돌린 사람은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일상과 상상,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소소한 감정들을 구구절절 적어내렸던 몇 권의 일기를 감쪽같이 훔쳐내어 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참으로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걸로 나를 다 안다는 듯 내 주위를 배회하며 애정을 강요했던 사람이다. 이후로 나는 사람을 바닥까지 깊이 신뢰하는데 더 많이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럴 사람인줄 몰랐는데 알고보니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체험하고 알게 된 것이다.


좋은 사람도 많은데 내가 유난히 필요 이상의 거리를 두는데는 그럴 만한 많은 이유가 있다. 한번 믿으면 끝간데 없이 간도 쓸개도 빼줄 만큼 마음을 주게 되는 성향이 있었던 탓에(아마도 애정결핍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처음엔 조금 경계하다 쉽게 마음을 열어놓고 어쩌다 상처받고 싫은데 내색하지 못하고 참아내다 아프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은 오래 나를 지켜보고 여전히 나를 봐주는 몇 사람들만 친구로 생각한다. 나도 그들의 블로그를 오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읽어서 어느 정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야 댓글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 대인관계는 급수로 따지면 완전 하급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신뢰하고 알던 사람 외에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지낸다. 특히나 내 몸이 아프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고 몇 달씩 입을 꾹 닫고 산다. 사람들과, 세상과 섞일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젠 누가 뭐라거나 별로 신경쓰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 언젠가 입 다물고 세상과 벽을 쌓듯 하고 지내는 시간이 또 올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그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사람들과 섞일 수 있다. 시간이 약이다.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하고 의논할 상대가 가까이 있다면 더 쉬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혼자 어떤 상태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힘들 때도 많고, 잘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다. 그나마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분들에게 실수하지 않으려고, 허술한 상태로 말 한마디 잘못해서 안하느니만 못한 경우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입을 꾹 다물게 된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오랜 블로그 친구였던 분, 아직도 블로그를 오가며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그 분들이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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