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 내 음력생일이 지났다. 어릴 땐 어머니 손에 항상 생일 미역국과 간혹 내가 좋아하는 쑥떡 차린 생일상을 받곤 했다. 부모님 슬하에서 벗어난 후에 생일은 가끔 내 존재에 대해 낮고 쓸쓸한 생각부터 시작하여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날이다.
올해는 딸이 미역국을 직접 끓여주겠다는 말하긴 했지만, 큰 기대하지는 않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딸이 언제 만들었는지 생일카드를 주고 학교에 갔다. 어린이집 다닐 때 내게 카드를 만들어준 뒤로 편지나 카드를 받은 기억이 감감한데 그날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고마웠다. 정말 고맙고 대견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걸 들고 오후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께 카드 보여주며 딸 자랑을 좀 했다.
뒷면에는 내가 한동안 거의 매일같이 하던 게임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다. 요런 앙큼하고 귀여운 센스쟁이 같으니라구.....
카드를 열어 안을 들여다보니 짠~
입체 꽃다발이다. 와~ 정말 감동적이다. 나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언제 이런 걸 만들었을까. 사소하다고 하지만 이런 것이 사소한 것이 아니다. 딸의 지갑에는 교통카드와 2~3천 원 정도의 용돈이 들어있다. 그걸로 뭔가 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고, 내게 돈 타서 뭔가 사 왔다면 그것도 이 만큼의 감동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방과 후에 휴대전화로 날아온 케이크 쿠폰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샀다. 해마다 내 생일 기억하고 선물로 쿠폰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나는 그 만큼 챙겨주지 못하는데 늘 고맙다.
딸 친구도 올 예정이었는데 저녁에 못 와서 딸이랑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저녁에 딸이 미역국을 끓이다 거실 소파에서 잠들어버렸다. 내가 마저 끓여서 간을 맞추고 생일 미역국을 먹었다.
이제 마흔여섯 살이 되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숫자에 대한 무게와 의무감도 생기고 나잇살이라고 우기는 살도 점점 늘어간다. 내년에는 나이만 먹고 더 무게감 느껴지는 중년은 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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