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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섬 <2010~2019>/<2015>

6월 30일

by 자 작 나 무 201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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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서 볼 만한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찾아놓고도 손이 가지 않아 열어보지 않은 영화도 있지만, 이젠 영화나 드라마 밀린 것 보는 일도 지겨워졌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도서관에 달려가서 냉큼 빌려온 책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약간 흥이 깨졌다. 이미 어딘가에서 읽어서 알고 있는 내용에 다른 양념들을 섞어서 써놓은 책이다. 내가 찾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은 책을 통해 꼭 찾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다. 뭐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슬쩍 시선 한 번 던지고 넘어가게 되는 것들 일색이다. 오래전 도스 체제의 컴퓨터를 처음 사용할 때 기본적인 도스 명령만 알면 컴퓨터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나는 그 원리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픈 욕심에 도스를 혼자 공부한 적이 있다. 물론 그걸 어디 써먹을 일은 없었지만, 일종의 자기만족이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컴퓨터는 마우스만 클릭하면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된 이후로는 더 복잡해진 컴퓨터와 관련된 체계를 공부하고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덩치 큰 애플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내 머리로 간단히 이해하기는 곤란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개괄적인 이해라도 하고 싶었다.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막연하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마뜩찮았던 10대를 보냈다. 어떤 책에서 본 유토피아를 실제로 이 세상에 구현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왜 좋게 좋게 넘길 수 있는 일을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해서 세상을 살기 힘들게 만들어놨는지..... 등등 어린 내 소견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읽고, 생각하고, 묻고 다시 생각하기를 반복한 뒤 나름대로 인생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을 만큼의 답을 얻은 후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열심히 잘 살면 된다. 쉬운 답이지만, 누군가에게 들어서 아는 것과 내가 깨달아서 자명한 것으로 인지한 것과는 앎의 질이 다르다. 

 

 

** 

20대 후반 즈음, 어떤 스님께서 내 주변에 있는 어떤 사람이 '탁하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사람을 가려서 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 '탁하다'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과 인연이 얽혀 좋지 않은 일을 겪어본 후로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는 어지간해선 사람들과 끈끈한 인연은 맺지 않으려고 피하는 편이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만나질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악연은 풀어야 할 것이 있다면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내가 굳이 사람을 끌거나 피할 이유가 딱히 없다.

 

그런데 내 성향이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더러 정에 고파서 간혹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엎어졌다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어서 굳이 어떤 인연인지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궁금한 대상이 아니면 적정선에서 피해가려고 한다.

 

계속 이렇게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것이 자신에게 여러모로 좋지만은 못할 것이므로 이젠 마음을 열고 누구든 기회가 되면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맑은 기운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단순하게 한 마디로 맑은 기운이라고 표현했지만, 알만한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

크로아티아 여행과 관련된 책을 한 권 빌려왔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 갑자기 식상해졌다. 내가 더 절실히 가고 싶은 곳은 인문환경이 멋진 곳보다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물론 크로아티아에 가면 폴리트비체국립공원도 있고 멋진 자연경관을 가진 곳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책을 펼쳐든 후로 계속 머리 속에 떠오르는 곳은 하와이, 뉴질랜드, 북유럽의 피오르.....같은 곳이다.

 

지금으로선 언제 갈 수 있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지만, 생각하는 대로 항상 길이 열리기 마련이니 어느날 나는 하와이나 뉴질랜드에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한때 유럽여행 때 꼭 가겠다고 벼르던 크로아티아는 뒤로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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