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정말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중3인 딸이 더 빨리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두 해 전 사진만 봐도 지금보다 훨씬 앳되어 보인다. 덩치는 나보다 큰 것이 나에게 매일같이 안겨서 아기 노릇을 한다. 오늘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다. 수업 마치고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고 용돈을 더 달라는데 어제 지갑에 만 원짜리가 한 장도 없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거나 마트에 가도 카드로 지급하다 보니 지갑에 지폐가 골고루 들어있지 않을 때가 많다. 전에도 꼭 이런 때가 있었는데 그땐 피자 배달시키고 오만 원짜리 지폐로 지급한 뒤 만 원짜리를 거슬러 받아서 썼다. 어제는 비도 오고 밖에 나가기 싫었다. 며칠 전부터 호박고구마 피자가 먹고 싶었다. 피자 주문하면서 이번엔 인터넷으로 카드 결제를 했다. 나는 아쉬운 것 없으니 아쉬운 네가 알아서 하란 식으로 가만히 있었더니, 딸이 오만 원권을 받아들고 동네 빵집에 가서 아이스크림과 빵을 사고 거스름돈으로 만 원권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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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랑 둘이서 실컷 피자를 한 판 거의 다 먹고 늘어져 있는데 저녁에 딸 친구가 피자를 사 들고 왔다. 지난 주말에 공부 같이하면서 저녁 해먹인 것 고맙다고 딸 친구 어머니가 피자를 사서 보내셨다. 어제는 덕분에 호박고구마 피자를 물리도록 실컷 먹었다.
목요일부터 같이 다이어트하자고 며칠 전부터 딸이 나름의 비장한 각오를 재차 삼차 다짐했다. 이번에 살을 못 빼면 졸업 사진이 뚱뚱하게 나올까 봐 걱정 되는 모양이다. 요즘 한참 즐겨 먹기 시작한 냉동과일과 우유를 섞어 갈아서 만든 과일 스무디와 시리얼, 닭가슴살, 삶은 달걀만 먹겠단다. 그러면서 주말 즈음에 꼭 장어탕을 먹으러 가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시험 끝나면 저녁마다 근처 학교 운동장 돌러 나갈 거란다. 이번엔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두고 봐야겠다. 나도 살 빼서 예쁜 레니본 원피스 사입고 싶다. 이참에 나도 반찬거리 사다 나를 걱정 하지 않아도 되면 좋지. 이미 사놓은 식자재는 다 만들어 먹어야 하니까 D-day로 설정한 내일이 되기 전에 오늘 다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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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알람을 맞춰 놓았다. 7월 1일 오전 9시에 제주절물휴양림 예약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실패했다. 8시 50분부터 접속한 다음 9시에 시작되는 7월 예약 버튼을 몇 번 미리 눌러보니 9시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떴다. 9시 정각에 다시 버튼을 누르니 서비스 이용이 불가하단다.
새로 고쳐서 몇 번 다시 해보니 날짜별로 예약이 전부 끝났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다. 휴양림 예약되면 제주에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여름휴가는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정말 9시 정각에 시스템이 다운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예약 버튼을 눌렀다지만 나만 안된 것 같아서 속상했다. 숙소 예약되면 비행기 편을 알아볼까 했는데 아쉽다.
어제저녁에도 시험공부 하다가 뜬금없이 딸이 공항 가서 면세점 구경도 하고 공항 안에서 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일본가는 비행기라도 태워줄까 했더니, 그건 싫단다. 그리고 일본행 비행기는 인천공항이 아닌 김해공항에도 있다니 더 김빠진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가끔 여행 사진 꺼내놓고 보면서 유럽 여행 다닐 땐 그냥 제주도 여행 간 것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그땐 왜 그렇게 좋은 걸 모르고 제대로 즐기지 못했나 하며 후회가 된단다. 이제 밀린 공부를 방학 동안 해내려면 여행경비가 마련되어도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면서도 둘이 틈만 나면 여행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거리곤 한다. 우리 모녀는 이 방면엔 정말 장단이 잘 맞는다. 여름방학이 되면 며칠간 어딘가 떠났다 오는 이야기를 하며 한때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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